|
베버, 카를 마리아 폰 (1786-1826)
Carl Maria Von Weber 독일 국민가극의 창시자
출생과 환경
독일의 작곡가. 홀슈타인주(州)의 오이틴 출생. 어려서 부친에게 초보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다음, 미하엘 하이든(요제프의 동생)에게 사사하였다. 18세 때 브레슬라우오페라극장의 악장이 되었으나 2년 후 사직하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으며 방랑생활 중에도 그는 오페라를 비롯하여 각종 작품을 썼다. 1813년 프라하의 오페라극장 지휘자가 되어 겨우 방랑생활은 끝났지만 17년 또다시 드레스덴으로 옮겼다. 이 무렵부터 낭만파음악가로서 그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유명한 《마탄의 사수 Der Freisch웪z》의 작곡에 착수하여 20년에 완성, 이듬해 6월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이 오페라의 대성공에 힘입어 다시 《오이리안테 Euryanthe》(1832)를 작곡하였으나, 이 무렵부터 결핵이 심해지고 생계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런던의 유명한 코벤트 가든극장으로부터 신작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아 《오베론:Oberon》을 작곡하였으며, 런던으로 가서 이 오페라를 초연(26)한 후,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베버에게는 기악곡도 많지만 그의 천분은 역시 오페라였으며,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일오페라의 새로운 낭만파적인 단계를 개척하였다. 작품으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콘체르트슈튀크:Konzertst웒k》 이외에도 대중적인 것으로 《무도에의 권유:Aufforderung zum Tanz》가 특히 유명하다.
작품의 특징 베버는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에 공헌하였다.
그의 극음악은 극적이며 서사적인 표현에 있어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2개의 교향곡을 남기기도 했지만 교향시 방면의 새로운 개척으로
새싹을 틔워 후세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