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 까미유  

<Saint-Saens, Camille>   (1835.10.9∼1921.12.16)

 

 

 

 

 

샤를 카미유 생상스는 183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여 5살 때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피아노 반주자로 무대에 섰으며, 10살 때 정식으로 데뷔 연주회를 열었다. 데뷔 연주회에서 생상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15번〉과 헨델, 훔멜, 바흐의 곡을 쳤으며, 앙코르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모두 외워서 연주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이 놀라운 음악 신동에 대한 소문은 유럽 전역을 너머 멀리 미국에까지 퍼져 나갔다.

1849년, 생상스는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1851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생상스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음악에 관한 온갖 상을 휩쓸다시피하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날렸고, 그 덕분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리스트와 친분을 쌓는 행운을 누렸다. 1853년에는 〈교향곡 제1번〉을 초연했는데, 당시 객석에 앉아 있던 베를리오즈로부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미숙함이 부족할 뿐이다."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1853년, 그는 생 마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857년에는 마들렌 교회로 자리를 옮겨 여기서 20년 동안 봉직했다. 마들렌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일할 때는 오르간 즉흥 연주로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1861년, 생상스는 니더마이어 음악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당시 유행하던 음악, 즉 리스트, 구노,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와 같은 현대음악에 눈살을 찌푸렸으며, 모차르트나 바흐 같은 보수적인 음악을 가르치는 학교의 커리큘럼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1870년, 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몇 달을 보냈다. 그런 다음 프랑스로 돌아와 로맹 뷔씬느와 함께 참신하고 프랑스다운 음악을 만들자는 기치 아래 국립음악협회를 조직했다. 파리 코뮌이 실각한 후, 회원들이 처음으로 작품 발표회를 가졌는데, 당시 작품을 발표한 작곡가는 포레, 프랑크, 랄로, 생상스 등이었다. 이 일로 인해 생상스는 향후 프랑스 음악을 주도하는 주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1886년 국립음악협회를 탈퇴했다. 프랑크, 댕디와 같은 작곡가들과 의견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절망이었다. 그는 울면서 차를 몰고 프랑스를 떠났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 그때부터 그는 '생느와'라는 가명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이국적인 풍광을 가진 유럽의 여러 지방뿐만 아니라 멀리 북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남미까지도 여행했다.

1908년, 생상스는 샤를 르 바르지와 앙드레 칼메트 감독의 〈귀즈 공작의 암살〉이라는 영화를 위해 세계 최초의 영화음악을 작곡했으며, 1915년 미국으로 건너가 파나마 운하의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개최된 파나마 태평양 국제 엑스포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 후에도 생상스는 연주와 여행을 목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1921년에는 아프리카의 알제리를 여행했는데, 거기서 폐렴에 걸려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상스의 음악은 고전주의적인 우아함과 균형, 세련미를 보여 준다. 프랑스의 작가 로망 롤랑은 이렇게 말했다.

 - 생상스의 음악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다. 정밀하고 간소하며 지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바꿈, 넘쳐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글룩이나 모차르트의 음악 같이 고전주의의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이런 절충적, 보수적 경향은 결국 그로 하여금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했다. 모든 장르에 걸쳐 대단히 많은 곡을 썼지만, 이런 다작이 개별 작품의 밀도를 희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음에도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포레나 프랑크만큼 후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생상스는 1850년에 첫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번호를 붙이지 않고 그로부터 3년 후에 발표한 교향곡부터 번호를 붙였다. 번호가 붙어 있는 그의 교향곡은 모두 세 곡인데, 그중에서 제3번 '오르간(Organ)'이 가장 유명하다. 1886년 작으로 기본적인 오케스트라 편성에 오르간이 첨가되어 '오르간'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외형적으로는 2악장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각 악장을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4악장이다. 1악장은 먼저 느린 서주부로 시작한다. 애조를 띤 짧은 멜로디를 오보에와 플루트가 연주한다. 주요부에서는 현악기가 제1주제를 제시하는데, 이 주제는 전곡에 걸쳐서 나타난다. 이어 서정적인 제2주제가 등장한다. 강렬하고 폭발적인 클라이맥스가 가라앉으면 오르간의 화음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며 느린 악장에 해당되는 후반부가 시작된다. 오르간이 현악기와 어울리며 칸타빌레풍의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2악장의 전반부는 일반적인 교향곡의 스케르초 악장에 해당된다.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열정적인 흐름에 피아노까지 가세해 눈부시게 질주한다. 후반부는 장대한 오르간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바이올린이 두 대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영롱한 아르페지오를 배경으로 1악장에 나왔던 주제의 변형 선율을 연주한다. 이후 오르간이 등장해 박진감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연출하고, 오르간과 전체 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대한 울림 속에 곡이 끝난다.

협주곡으로는 5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3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2개의 첼로 협주곡이 있으며, 협주곡 양식을 띤 소품으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하바네즈(Havanaise in E major Op.83)〉와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in A minor Op.28)〉가 있다. 이 중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1863년 당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했으며, 사라사테에 의해 초연되었다. 곡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에 느리고 서정적인 서주가 나오고, 이어서 우아하고 경쾌한 카프리치오소가 나온다. 기교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우아하고 밝은 프랑스풍의 정취를 풍기는 매우 매력적인 곡이다.

관현악곡으로는 교향시가 유명하다. 생상스는 모두 4곡의 교향시를 썼다. 앙리 카잘리스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Op.40)〉,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그린 〈옹팔레의 물레(Le Rouet d'Omphale Op.31)〉와 〈파에톤(Phaéton)〉, 〈헤라클레스의 청년시대(La jeunesse d'Hercule)〉 등이 있다. 모음곡으로는 〈알제리 모음곡(Suite Algerienne Op.60)〉과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를 작곡했다.

이 중 〈동물의 사육제〉는 1886년 작곡한 작은 편성의 실내 관현악곡으로 〈서주와 사자 왕의 행진〉, 〈수탉과 암탉〉,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수족관〉, 〈귀가 긴 등장인물〉, 〈숲 속의 뻐꾸기〉, 〈커다란 새장〉, 〈피아니스트〉, 〈화석〉, 〈백조〉, 〈피날레〉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들의 특징을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그려 낸 작품이다. 첼로 독주와 하프가 함께 연주하는 〈백조〉가 가장 유명하다.

생상스는 여러 편의 오페라도 작곡했다. 하지만 지금은 1875년에 발표한 〈삼손과 데릴라(Samson et Dalila)〉만 공연되고 있다. 이 오페라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은 이교도와의 전쟁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하지만, 데릴라라는 요부의 꼬임에 빠져 자기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사실을 발설한다. 데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힘을 잃은 삼손은 이교도에게 체포되어 온갖 모욕을 받는다. 하지만 처형 직전 신의 가호로 괴력을 회복한 삼손이 사원의 기둥을 무너뜨려 수많은 군중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히브리풍의 유연한 멜로디와 이교도인 펠리시테 민족의 관능적인 음악을 대비시켜 독특한 음악적 효과를 보여 주는 오페라이다. 1막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부르는 〈봄을 보라(Voici, de printemps)〉, 발레 〈무녀들의 춤〉, 데릴라의 사랑 노래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Mon cœur s'ouvre à ta voix)〉, 2막에서 술의 신 바쿠스 축제에서 추는 춤 〈바카날레(Bacchanale)〉가 유명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피아노곡 〈베토벤 주제에 의한 변주곡〉, 〈6개의 연습곡〉, 실내악곡으로 〈피아노 4중주〉, 〈현악 4중주〉, 오페라 〈동양의 공주〉, 〈은방울〉, 〈헨리 8세〉, 가곡 〈페스리아의 노래〉, 교회음악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레퀴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