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 피아노협주곡 제1번

 

이 작품은 민족주의적 낭만시대에 살았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가로서의 면모를 잘 들어내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처음부터 이 곡을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에게 헌정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1875년(35세) 2월에 이 곡을 완성하자 곧 그 초고를 들고 루빈시타인을 찾아갔다.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은 피아노의 거장으로 유명한 안톤 루빈시타인의 동생이며 형에 못지않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당시 차이코프스키가 몸담고 있던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은인이요 선배일 뿐만 아니라 아주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이 곡을 시청하는 자리에는 동료교수인 후버트도 함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모스크바 악단의 중진인 이 두 사람에게서 좋은 평이 나오기를 기대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전기를 쓴 바 있는 카슈린은 그 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악보 표지]에는 니콜라이에게 드리는 헌정사가 씌어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의 성과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니콜라이에게서 큰 칭찬이 나올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니콜라이는 피아니스트도 아닌 차이코프스키가 이 곡을 씀에 있어서 자기에게 한 마디 의논도 하지 않은데 대해 불쾌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으로 처음부터 적의와 편견으로 대했다.

그래서 루빈스타인은 이 곡이 피아노에는 부적당하다느니, 칙칙하다느니, 독창성이 없다느니 하면서 격렬하게 까내렸다. 차이코프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루빈시타인의 충고에 애정과 진의가 깃들어 있었다면 차이코프스키도 그의 말을 경청하고 개작했을지도 모른다. 내성적이었던 차이코프스키는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악보 하나라도 변경하지 않고 출판하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모처럼 썼던 헌정사를 찢어버리고, 얼마 전부터 알게된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그토록 친했던 두 사람 사이는 벌어지고 말았다. 이 곡은 뷜로에 의해 1875년 10월 25일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루빈시타인은 이 곡이 초연된 3년 후에 차이코프스키에게 사과하고 그 뒤로는 그 자신의 연주회에서 이 곡을 자주 연주함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었다.

이 곡은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이 지적하여 말하였듯이, 피아노 독주부에 꽤 어려운 기교가 요구되고 있다. 물론 이 곡이 작곡된 그 때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피아니스트의 기교도 장족의 진보를 하고는 있으나 꽤 숙달된 피아니스트가 아니고서는 완전히 쳐내지 못한다. 특히 격렬한 춤곡 가락이 난무하는 제3악장에서 그렇다.

이 작품은 세련된 서구적 협주곡과 달리 러시아적인 어둡고 서정적인 선율과 슬라브적인 거칠고 중후한 화음, 색채적인 관현악,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솔로 피아노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엔 피아노 협주곡의 최고 인기작의 하나로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피아노 본선 지정곡으로 비르투오조적 피아니스트의 끊임없는 도전의 대상이 되어왔다.

 

전곡 중 4개의 혼에 의해 유도되는 제1악장 도입부의 주제도 인상적이지만 독주 플루트에 의한 목가적인 제2악장 안단테 주제와 현에 의한 제3악장의 가요풍의 제2주제가 특히 아름답다.

 

제1악장 b단조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3/4.

4대의 호른이 제1주제의 동기를 느닷없이 도입하고 이윽고 독주 피아노의 요란한 화음을 뒤따르게 하면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호쾌하게 제1주제를 제시하여 간다. 곡은 고조되어 피아노의 카덴차로 옮겨가서 다시 제1주제가 피아노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재현, 전개된다. 그러나 제1주제의 악상은 이후에는 전개부에도 재현부에도 나타나지 않고 여기서 그만 모습을 감추고 만다. 극히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다. 이어 피아노에 새로운 Allegro Con Spirito의 주제가 나타나고 기분을 새롭게 하면서 경과부로 들어간다. 이 주제는 전개부에서 활약하지만 재현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어 클라리넷이 약간 우수를 띤 Poco meno mosso의 제2주제를 제시하고 피아노가 반복한다. 이후 다시 부차 주제가 현으로 연주되고 관으로 전개되어 가는데 전개부나 코다에서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는 듯한 악상이다. 전개부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추이한다. 또다시 피아노가 재현부를 도입하고 카덴차를 지나서 코다로 찬란하게 끝난다.

 

제2악장 Andantino Semplice D flat장조 6/8.

세 도막 형식으로 제1부의 주제는 피치카토를 수반하는 플루트로 제시되고 피아노가 이 것을 받는다. 목가적인 아름다운 악상인 것으로 이후 다시 첼로, 오보에로 이어진다. 중간부는 프레스티시모로 바뀌어 수선스러운 랩소디 풍의 악상이 전개되는데, 다시 피아노가 제1부주제를 재현하여 제3부로 들어간다. 여기서 주제는 장식적으로 변주되고 있다.

 

제3악장 Allegro con fuoco b flat단조 3/4.

자유로운 론도 형식. 짧은 도입 뒤 피아노가 슬라브 풍의 선이 굵은 론도 주제 A를 연주한다. 이어지는 부주제 B는 바이올린 가요풍의 감미로운 악상으로 특징있는 리듬을 나타낸다. 이 론도는 이상 2개의 주제로 구성되고 부주제 C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 부주제 B는 코다의 앞에서 재현, 반복되는데 거기에서는 크게 솟아 오르면서 고조되어 이 호쾌하고 화려한 협주곡의 끝곡에 어울리는 클라이맥스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