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el

- 감상적이며 우아한 왈츠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아델라이드와 꽃말 - 발레의 줄거리

배경은 1825년 무렵, 파리의 고급 기녀 아델라이드의 집입니다.
무도회가 열리고 주인공과 아델라이드를 연모하는 미남 청년 로렌다가 초록빛 살롱에서 꽃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는 내용이지요.
여기에 로렌다와 3각관계를 연출하는 부유한 공작이 나와서 이야기를 한층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끕니다.

 

제 1곡 Moderato , G장조 3/4박자.

아델라이드 집에서의 무도회. 많은 남녀가 즐겁게 춤을 줍니다. 그녀는 방을 돌면서 손님을 환대합니다. 곡은 화려한 기분이 나는 합주. 처음 4마디 다음에 나오는 목관과 바이올린에 의한 상승적 악구는 즐겁고 유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곡은 제1, 제 2왈츠로 전개됩니다.

 

제 2곡 아세 랑 Assez lent (Molto Adagio), g단조 3/4박자.

"아름답고 우아하며 애수를 띤 청년 로렌다의 등장.

" 아델라이드와 꽃송이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그가 바치는 미나리아재비꽃(혹은 봉숭아)은 매력에 찬 그녀에 대한 찬미를 뜻합니다. 이 곡은 제 1곡과는 대조적인 선율인데, 스페인의 옛 춤곡인 사라방드에 가까운 우아함과 우수를 가지고 있습니다.여기서는 세 개의 선율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오보에와 파곳으로, 다음에는 플루우트 솔로로. 마지막에는 처음의 선율 - 오보에와 파곳에 의한 - 을 삽입하고 그 위에 떠오르는 플루우트 솔로의 가락을 들려줍니다.

 

제 3곡 Moderato , G장조 세 도막 형식 3/4박자.

아델라이드가 준 국화가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닌 것을 알고 로렌다는 생각을 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는 역시... 도도합니다. 이 곡은 경쾌하면서 조금 차디찬 빛깔을 하고 있습니다. 스코어 속에 나타난 음의 빛깔과 다채로움은 관현악의 마술사 라벨다운 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제 4곡 아세 아니메 Assez Anime (Molto Animato), C장조 3/4박자.

"아세 아니메"란 더욱 역동적으로, 라는 뜻입니다. 앞서 나온 곡의 끝을 맺는 바이올린의 테마가 이 곡의 테마가 됩니다. 이 선율이 먼저 플루우트의 여린 선율로, 그 다음에는 클라리넷, 다시 플루우트와 클라리넷을 돕니다. 약간 집요한 성격의 이 주제는 소박함과 더불어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요. 이 장면은 이야기가 잘 되어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돈 많은 공작이 나타나 로렌다가 당황하는 부분입니다. (불쌍한 로렌다! ) 중후함은 공작의 분위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네요. 이 중후한 선율은 차차 pp 가 되고 다음 곡 주제의 첫 한 박자를 클라리넷에 남기면서 끝이 납니다.

 

제 5곡 프레스끄 랑 Presque lent (Piu Lento), E장조 3/4박자.

"거의 렌토와 같은 빠르기로."

공작은 아델라이드에게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 상자와 해바라기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헛된 부富를 뜻한대요.> 앞서 남은 한 음을 이어받은 클라리넷이 테마를 연주하면 잉글리시 호른이 이어 받으면서 곡이 전개됩니다. 현과 목관이 아라베스크를 수놓고 다양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중간에 바이올린이 등장하는 부분을 빼고는 약간 쓸쓸함이 느껴지는 곡이지요.

 

제 6곡 아세 비프 Assez vif (Molto Vivace), C장조 3/2박자.

로렌다는 계속 아델라이드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그때그때 적당히 그를 대하면서 거절하지만 로렌다는 꿋꿋이 따라다닙니다. 이 곡에서는 박자가 3/2, 6/4 등으로 변화를 하는데요, 빠른 진행과 더불어 줄거리의 내용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자가 변화하면서 주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대조와 융합을 거듭합니다. 전체 곡 중에서 가장 눈부신 느낌을 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제 7곡 모엥 비프 Moins vif (Vivace), A장조 3/4박자.

공작은 아델라이드에게 춤을 추자고 신청합니다만, 아델라이드는 받아들이지 않고 로렌다를 상대합니다. (불쌍한 공작! ) 풀이 죽어 한 구석에 있던 로렌다, 아델라이드는 그에게 춤을 권합니다. 로렌다는 사양하다가 끝내 함께 춤을 춥니다. 음악은 앞서 나온 곡의 마지막에 목관으로 취주되는 가락을 주제로 합니다. 약간 궁금증을 주는 듯한 서주가 끝나면 경쾌한 왈츠가 시작됩니다. 왈츠의 주제는 제 2바이올린에서 제 1 바이올린으로 옮겨가고, 점점 전개부는 화려해집니다. 이 곡은 전 곡 중에서 가장 다채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이 곡이 가장 긴 축에 속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곡이 그리고 있는 정취 역시 명랑함에 다름 아니지요.

 

제8곡 에필로그 Epilogue 랑 lent (Lento), G장조 3/4박자.

파티는 끝이 나고... 피곤해진 아델라이드. 혼자 창에 기대어 지친 얼굴로 라일락 향기(쾌락의 상징이래요! )를 맡습니다. 로렌다가 발코니에 나타나 실망의 상징인 측백나무의 꽃과 금잔화를 던지고, 권총으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가슴에 꽂고 있던 장미 한 송이를 살며시 떨어뜨리면서 그의 가슴에 몸을 던집니다. 이 곡은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하는 테마로 여리고 슬프게 시작됩니다. 곡이 고조하려다가는 가라앉으면서 전개하는 가운데 제 1곡 이후의 가락들이 슬쩍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클라리넷의 가락이 피로한 기분으로 낮게 연주됩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주제는 하프와 현의 음으로 고요히 사라지면서 음악과 함께 발레도 막을 내립니다.

 

이 곡은 1912년 4월 22일, 파리 샤트레 극장의 트로바 무도회에서 초연 되었습니다.
연주 시간은 약 17분 정도입니다. 이 곡을 피아노 곡으로 들어보면 다소 강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는데요, 라벨은 이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면서 부드러운 분위기와 색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맛깔스러운 관현악적 요소, 바로 그것이 라벨다운 면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군요.

그는 개인적으로 이 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슈베르트의 예를 따라 왈츠의 연쇄를 작곡하려고 한 나의 의도가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곡은 원래 작곡될 때부터 순수하고 명석한 요소로 일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건실한 화성, 입체적인 묘사.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면도 있습니다만 사실 이러한 단순성은 라벨이 오랫동안의 추고를 거듭하여 얻어낸 생략과 긴축의 미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곡은 17분 정도니까 관현악이나 발레로서 그리 큰 작품은 못됩니다만, 악기군 배분의 복잡함이나 다양성 그리고 풍부한 느낌으로 볼 때 독특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이 곡에 대해 그는 "앙리 드 레니에"의 시집을 인용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헛된 일을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즐겁고 또한 언제나 새로운 기쁨이다."

이 말로부터 우리는 그의 의도를 하나 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 곡을 쓰는 것은 하나의 유희와도 같았던 것이지요. 이 곡은 그의 다른 왈츠인 '라 발스 La Valse' 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오히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e d funte' 와도 흡사한 루이 왕조 풍의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