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아직 파리음악원에 재학중이던 1899년(24세)에 작곡한 피아노 곡을 그로부터 11년 후인 1910년(35세)에 다시 오케스트레이션 한 곡이다. 이 원곡인 피아노곡은 우아한 향기와 감상을 지녔기 때문에, 프랑스의 여성들 특히 아가씨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매력있는 클래식으로서 많은 피아니스트의 레파토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아직도 라벨의 개성이 충분히 나타나 있지 않았다. 라벨 자신의 자기 비판이 너무 엄하다는 것은 정평이 나있으며, 1921년에 라벨 자신은 이렇게 말히고 있다. <저는 이 곡의 결점을 인정합니다. 그것은 샤브리에의 영향이 아주 분명하다는 것과 또한 구성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곡을 다시 오케스트레이션한 것도, 되도록 원곡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곡은 라벨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발라스케스가 그린 왕녀의 초상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하는 말에 불과하다. 이 제목의 <죽은 왕녀>란 라벨 자신의 말을 빌린다면 <단순한 수사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파반느>란 16세기 초에 궁중에서 유행한 춤곡인데, 처음에는 3박자였다가 나중에는 2박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파반이란 말은 라틴어로 <공작>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마치 공작처럼 우아한 위엄을 가지고 춤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곡은 도입부가 없이 호른의 주선율로 시작된다. 어딘가 쓸쓸함을 간직한 전아한 선율은 가슴에 스며드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중간부의 라르고에 들어가면 풀루트에 가느다란 음형의 선율이 나타난다. 그것이 클라리넷과 현악기에 옮겨져 발전한다. 그러다가 다시 최초의 전아한 선율이 반복되고, 귀족적인 향기를 아련히 남기면서 꺼지듯이 곡은 끝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