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의 승리가 아닌 사랑의 승리” 오페라는 모두 비극인 것일까? 오페라는 원래 소포클레스 스타일의 그리스 悲劇을 재현하기 위해 탄생한 것인 만큼, 원래 오페라의 정신은 悲劇性에 있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오페라들이 비극인 것이 사실이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오페라가 발전하면서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오페라들도 나타났는데, 이런 희가극을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부파’, 프랑스에서는 ‘오페라 코미크’, 독일에서는 ‘징슈필’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다. 징슈필의 경우는 이전에 이미 <후궁 탈출>로 여기서 소개한 바 있다. 특히 대표적인 희가극인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경우는 결말만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의 내용이나 음악도 시종 즐겁고 코믹하다. 파리에는 파리 오페라 코미크 座라고 하여 오로지 희가극만을 공연하고 즐기는 극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한 때 희가극은 크게 발전했었다. <사랑의 묘약>을 쓴 사람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이다. 그는 무려 60여 편의 많은 비가극으로 유명한 대가이지만, 희가극에도 훌륭한 솜씨를 동시에 발휘하였다. 도니제티는 단 14일 만에 이 <사랑의 묘약>을 작곡하였다고 하는데, 그 후 160여년 동안 이 작품은 가장 뛰어나고 유쾌하며 아름다운 희가극으로 아직까지도 전세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오페라의 내용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전설이나 童話의 소재가 되어왔던 소위 묘약(elixir)에서 그 힌트를 가져온 것인데, 그것을 마시면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신비한 약이다. 스토리는 이탈리아(아니 유럽의 어디라도 상관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농촌을 무대로, 소박한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즐거운 사랑의 이야기이다. 네모리노는 순박하고 바보처럼 약간은 모자라는 시골 청년인데, 깜찍하고 영악한 처녀 아디나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똑똑한 아디나는 그에게 냉정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 마을에 주둔한 부대의 씩씩하고 남성미 만점의 하사관이 아디나에게 나타난다. 하사관은 아디나에게 저돌적으로 구애하면서 결혼을 재촉한다. 이에 속수무책의 네모리노는 마음만 태우고 있는데, 그 때 마을에 엉터리 약장수 둘카마라 박사가 등장한다. 둘카마라의 속임수에 넘어 간 네모리노는 그만 가짜 사랑의 묘약을 사고 만다. 결국 이야기는 그러나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네모리노의 사랑은 이루어지고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난다. 그런데 아디나가 네모리노를 받아들이는 것은 약 때문이 아니라 네모리노의 순수한 마음씨 때문이었다. 하지만 네모리노는 묘약 때문일 줄로 믿고 약효와 박사님에게 감사하고, 둘카마라는 자기 명약의 영험함에 더욱 기고만장해 진다. 어떻게 보면 두 주인공 남녀와 또 한 명의 라이벌로 이루어지는 삼각관계, 그리고 사랑의 중계자 구실을 하는 광대 같은 역할인 약장수 - 구태의연하고 단순한 구성이지만 이런 형태가 바로 희가극의 전통적인 형식이다. 유명한 희가극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 등이 모두 이런 골격을 가지고 있으며, 요즘 대부분의 코미디 드라마도 이것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최고의 예술로 만든 것은 바로 오페라의 힘이며 도니제티의 천재성이다. 사랑의 묘약에는 시종 유쾌한 음악이 계속되는데, 끊임이 없는 즐거움은 관객들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지겨운 대목은 거의 없으며, 처음 듣는 사람도 극중으로 빨려 들어가는 매력이 있다. 또 순진무구한 네모리노나 깜찍하고 지혜로운 아디나 그리고 익살맞은 둘카마라 박사 등은 모두 오페라 속의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사랑의 묘약>속의 수많은 아름다운 아리아들과 중창들 중에서도 일반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알지 못한 채 이 곡만 듣는 사람들은 아주 슬픈 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니 이 노래는 네모리노가 슬퍼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아디나가 몰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눈물을 보니 그녀도 사실은 나를 사랑하는구나!”하며 감격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가사내용> 남몰래 흘린 눈물이 두 뺨에 흐르네. 내게로 향한 생각이 진정한 사랑이요. 이 오페라의 위대함은 바로 아디나의 지혜에 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성찰 끝에 네모리노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둘카마라의 약이 엉터리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약보다도 마음이 우선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을 관용으로 껴안는다. 도리어 생각이 짧은 둘카마라 박사는 자신이 자신의 약에 暗示를 당해서, 세상의 병들이 다 자신의 의료 때문에 낳았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