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Debussy, Achille Claude (1862 - 1918) France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클로드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특유의 아름답고 간결한 멜로디로 그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릴 뿐만 아니라, 그의 프랑스적 취향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프렐류드(Prélude)’, ‘미뉴에트(Menuet)’, ‘달빛(Clair de lune)’, ‘파스피에(Passepied)’, 이 상의 네 개의 곡을 모아놓은 이 모음곡은 드뷔시가 23세인 1890년에 작곡했는데 이후 1905년에 돼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같은 해 작곡한 [마주르카 Mazurka] 역시 1905년에 출판되었는데, 드뷔시는 자신이 젊었을 때 작곡한 작품들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시대 흐름에 따른 관점의 변화에 의거해 작품에 철저한 비판과 수정을 가했고, 그 후에 뒤늦게 출판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이 처음에 얼마나 작곡되었는지, 이후 출판된 무렵에는 어떤 부분이 수정되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개 정도의 작품 제목이 바뀌었음를 알 수 있다. 원래 ‘파스피에’는 ‘파반느’로, ‘달빛’은 ‘감상적인 프롬나드’로 제목 붙여져 있었다. 이들 원제는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집 [우아한 향연 Fêtes galantes] 중 ‘세레나데’에 나타난 언어 논리를 음악의 세계를 통해 암시하고 있으며, 드뷔시는 이 시집의 유명한 한 행을 참고해 곡 제목을 붙였다. 또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17세기 음악의 분위기와 프랑스 클라브생 주자들의 명석하고 즐거운 양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곡이다. 그런만큼 그 시대에 대한 동경과 아이러니를 섞어내 프랑스적 혼합체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드뷔시의 신고전주의적 의도 또한 엿보이는 작품이다.

네 곡 모두에서 후기 낭만주의 특유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며, 드뷔시가 막 확립해낸 독특한 화성과 신비로운 음색을 바탕으로 한 바로크적인 뉘앙스가 돋보이고 있다. 특히 ‘전주곡’의 독특한 터치감은 류트나 클라브생을 위한 전주곡을 연상시킨다. 이어 등장하는 전형적인 바로크 무곡인 ‘미뉴에트’와 ‘파스피에’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한편 독립적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달빛’은 그 신비로운 화성과 은유적 분위기로 인해 ‘신고전주의자 드뷔시’의 음악적 신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드뷔시가 젊었을 때 작곡한 작품인 만큼 음악적으로 한층 느슨했을 것이라 추측되기도 한다. 드뷔시는 자신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자유롭게 구사하게 된 1903년 이후 본격적으로 피아노 음악에 집중했다.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출판했다. 그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 오랜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폴 베를렌의 시적 뉘앙스 또한 한층 경묘하게 배가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