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번 바단조 Op.2 No.1

 

본에서 요제프 하이든을 만난 베토벤은 그의 추천으로 1792년 빈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비로소 작곡가로서의 천재성과 피아니스트로서의 비르투오시타(virtuosità, 뛰어난 연주 기교나 명인적인 기술)를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는 하이든의 도움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빈의 귀족들과 친분을쌓으면서 많은 후원자를 얻게 되었는데, 그 답례로 베토벤은 자신의 첫 출판 작품인 3개의 피아노 트리오 Op.1은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했고 두 번째 출판 작품인 3개의 피아노 소나타 Op.2는 스승이자 멘토인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1796년에 출판한 초기 피아노 소나타 Op.2는 이미 1795년경에 완성된 듯 보이는데, 그해 3월 베토벤은 빈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최초로 공개 연주회를 가지며 높은 평가를 받았던 만큼 표현력의 원천과 형식에 대한 감수성에 있어서 이미 거장다운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이후 베토벤은 빈에서 피아니스트로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즉흥연주로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제자인 카를 체르니(Carl Czerny)는 당시 베토벤이 동시대인들에게 준 인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의 일입니다. 게리네크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게리네크는 그날 밤 어떤 모임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친분이 깊지 않은 피아노 연주가와 일전을 벌이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놈을 납작하게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네’라고 게리네크는 말했습니다. 그다음 날 아버지는 전날 밤의 승부는 어떻게 되었냐고 게리네크에게 물었습니다. 게리네크는 한숨을 섞어 완전히 쓰러진 상태가 되어 대답했습니다. ‘어제 일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젊은이에게는 악마가 붙어 있었어요. 그런 연주는 들은 일이 없었어요. 그는 내가 제시한 주제로 즉흥연주를 했는데, 모차르트라도 그만큼 잘 치지는 못했을 것이에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엄청난 음악이었습니다. 그가 피아노에 실어낸 난해함과 주제들의 변용은 우리들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더냐?’라고 아버지가 묻자 그는 ‘추하고 음흉하며 완고한 생김새로서 작은 몸집의 젊은이였는데, 리히노프스키 공작이 수년 전에 독일에서 데리고 와 이곳에서 하이든, 알프레히츠베르거,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우게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름은 베토벤이라고 하더군요.’”

이 Op.2에서 나타나는 주제와 모티브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과 치밀한 구성력은 하이든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를 연상케 하는 풍부한 멜로디와 더불어 클레멘티(Muzio Clementi) 소나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급박한 성격 또한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 초기 베토벤의 모델이었던 C. P. E.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의 후기 소나타들에 비견할 만한 수준 높은 표현력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첫 세 개의 소나타들은 선배들의 작품과 비교하며 평가할 만한 수준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베토벤이라는 젊은 작곡가의 강렬한 개성과 걸출한 피아니스트로서의 탁월한 테크닉을 인지시켜주기에 충분한 걸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I악장: 알레그로

충격적인 스포르찬도(sforzando, 그 음만 특히 세게)와 갑작스러운 피아니시모(pianissimo, 매우 여리게)로 시작하는 1악장 주제는 당시 베토벤의 전형적인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4악장의 주제와 비슷한 음형을 보여주지만 주요주제에 아우프탁트(Auftakt, 여린 박자)를 새로이 덧붙임으로써 주요주제와 부주제의 대비를 강조한다.

2악장: 아다지오

3/4박자의 서정적이고도 소박한 느린 악장으로 피아노의 서법은 아직 모차르트와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주요주제는 세도막 형식인 A-B-A를 취하고 있는 만큼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KV.576의 아다지오(adagio, 매우 느리게)와 동일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1785년 초기 피아노 4중주의 느린 악장에서도 이 주제가 사용된 것을 미루어 볼 때 베토벤의 초기작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구상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악장: 미뉴에트 - 알레그레토

고전적 소나타 양식에 의한 단조 미뉴에트로 싱커페이션(syncopation)과 드라마틱한 휴지부, 예리한 다이내믹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4악장: 프레티시모

뒤에 스케르초 악장이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 베토벤이 전통에 가한 최초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선배들보다 훨씬 장대한 형식의 피아노 소나타를 추구하여 열손가락으로 가능한 교향곡을 꿈꾼 것이다.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의 쾌속질주를 통해 열정의 극단적인 표현을 꾀한 모습으로부터 젊은 베토벤의 야심만만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