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피아노협주곡 제5번 내림마장조 "황제"

 

베토벤의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최대의 걸작이다. 아니 그때까지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웅장한 곡이다. 누가 먼저 말하기 시작하였는지는 모르나, 이 협주곡은 흔히 《황제》라고 부르고 있다. 이 곡의 당당함이란 진실로 황제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이런 연유로 하여 황제라 불리게 된 것이리라.

따라서 이 별명에 대해서 베토벤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며, 또 《황제》라고 나중에 부르게 되었으나, 이것이 어떤 특정인을 지목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작곡된 제4번 협주곡에서 독주 피아노로 시작된다는, 새로운 주법을 시도한 베토벤은 여기에서는 제1악장의 첫머리를 독주 피아노의 카덴짜로 개시하는 또 다른 새로운 진행을 꾀하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극히 호화로운 인상을 주고 있다.

또 이 악장의 마지막 카덴짜가 나올 곳에서, 베토벤은 자신이 직접 적어 놓고, 즉흥적으로 도입되는 종래의 카덴짜가 행하여짐을 금지하고 “카덴짜는 필요 없으며, 그대로 계속한다”라고 주석을 붙이고 있다.

제2악장에서 쉬는 일 없이 제3악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앞서 제4번과 같으나, 이번의 것은 대조의 묘미가 특히 잘 나타나 있다.

 

이 곡은 1808년에서 다음 해에 걸쳐 작곡되었다. 노테봄의 <베토베니아나>의 제29장 “게네랄바스와 작곡법에 관한 베토벤의 원고…”란 항목이 있는데, 이것에 의하면 베토벤은 루돌프 대공에게 작곡을 강의하였다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180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다음 해에 프랑스 군이 비인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대공은 9개월 동안 비인으로부터 피신하여, 강의는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증거로 작품 81 a의 내림마장조 피아노 소나타의 제 1악장의 원고에는 “이별의 인사, 비인 1809년 3월 4일 루돌프 대공의 떠남에 즈음하여”라고 적혀 있으며, 마지막 악장에는 “1810년 1월 30일, 루돌프 대공의 도착”이라 적혀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이와 같이 모든 면으로 들떠 있고, 또한 프랑스 병에게 고욕을 받고 있을 시기에, 이 곡은 작곡되었다. 프랑스의 장교와 서로 스쳐 지나칠 때, 베토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내가 만약 전술(戰術)을 대위법만큼 알고 있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을”이라고 말하였다는 것도 이 때의 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곡의 초연은 비인이 아니고, 라이프찌히이며, 1811년 11월 28일 게반트하우스에서 행하여졌다. 독주자는 당시 라이프찌히의 파우리네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시나이더(Johann Friedrich Schneider, 1786~1853)이며, 크게 호평을 받았다.

비인에서는 그 다음 해인 1812년 2월 15일에 피아노 교칙본으로 명성을 떨친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가 독주자로서 케른트나르트 극장에서 연주되었는데, 이 때의 평은 좋지 않았다.

역시 이 곡도 제4번 사장조와 같이, 베토벤의 생존시에는 다시 연주되지 않았으며, 루돌프 대공에 바쳐진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