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이웃인 프랑스에서는 옛날부터 샹송(Chanson)이라든가 멜로디(Melodie)라는 예술적 가곡이 많이 창작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기악적(器樂的)인 음악이 주류를 이룬 나머지, 예술적인 가곡이 태어날 수 있는 배경은 18세기 후반까지는 전혀 조성되어 있지 못했다. 그것이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조건이 성숙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곡가 쪽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괴테나 실러 같은 뛰어난 시인들이 잇따라 훌륭한 시들을 내놓음으로써 그 기운(機運)이 무르익어 갔던 것이다. 무릇 가곡의 작곡에는 풍부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천분(天分)과, 시가 표현하는 세계에 대한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각을 지닌 천재가 필요하다. 1797년,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가 죽은지 6년, 베토벤이 비인에 나와서 신진작곡가로서 지반을 굳히고 있던 때인데, 이 해에 비인 거리에서 태어난 프란쯔 슈베르트야말로 독일 가곡에 대한 독특한 사명과 천부(天賦)의 재능을 타고난 가곡의 대 천재였다. 슈베르트는 1811년(14세)에 「하가르의 한탄」이라는 노래를 지었다. 구약성서(舊約聖書)창세기 제16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의 시녀 하가르의 이야기를 담은 긴 가곡인데, 이것이 그의 처녀작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훨씬 이전에 쓴 것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들은 모두 파기(破棄)되었다. 이 처녀작 이후에 슈베르트는 실러나 괴테의 시를 중심으로 죽던해인 1828년까지의 불과 18년 동안에 603곡의 가곡을 지었던 것이다. 슈베르트의 재능이 얼마나 일찍 나타났느냐 하는 것은 17세 때 「물레 잣는 그레트헨」,그이듬해에 「마왕(魔王)을 각각 작곡한 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 그러면 그토록 높은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 슈베르트의 가곡은 어떠한 특색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첫째로 시와 음악의 합일(合一)이다. 슈베르트는 시에 쓰여진 언어의 뉘앙스를 아주 정확히 포착해서 음악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슈베르트의 가곡을 원래의 독일어 이외의 외국어로 고쳐서 부를 때는 그 가사와 음악의 긴밀한 연관이 깨어지고 만다. 그래서 연주회에서는 원어(原語)대로 부르는 것이 통례이다. 둘째로 반주에 단지 하모니를 보강할 뿐만 아니라 시 전체의 기분을 표현코자 한 점이다. 예컨대 「물레잣는 그레트헨」에서는 피아노의 오른손에 줄곧 물레가 빙글빙글 도는 듯한 음형(音型)을 치게 하고 있으며, 연가곡집「겨울 나그네」의 유명한「보리수(菩提樹)」에서는 전주(前奏)와 후주(後奏)에 보리수 잎이 부시럭거리는 음형이 나타나는 따위다. 이처럼 반주 피아노에 중요한 구실을 하게 한 것은 슈베르트의 커다란 공적이다. 셋째로 그 선율의 다양성(多樣性)과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비인의 자연처럼 소박하고 청순(淸純)하며, 설사 가사나 반주에서 분리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써 충분히 우리를 감동케 만드는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색을 지닌 슈베르트의 가곡 가운데에는「마왕」이나「들장미」처럼 단독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연 가곡집「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처럼 아예 처음부터 정돈된 가곡집으로 씌어진 것도 있다. 이것과 연가곡집「겨울 나그네」 및 연가곡집「백조의 노래」를 총칭하여 슈베르트의「3대 연가곡집」이라 부르고 있다. 가곡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의 위대성은 이「3대 연가곡집」에 모두 집약(集約)되어 있다고 말해서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이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1823년 그의 나이 26세 때 작곡된 것이다, 몇곡의 가곡을 짝지어서 작곡한다는 일은 이미 베토벤의 「먼곳의 애인에게」라는 선례(先例)가 있긴 하지만, 이 가곡집처럼 일관된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모은 것〔連作〕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래서「연(連)」자를 앞에 얹어서「연가곡집」이라 구별지어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나중에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죽음의 병상(病床)에서 이 연가곡집의 소식에 접한 베토벤은「슈베르트에게는 성스러운 불꽃이 있다」고 격찬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슈베르트가 이 가곡집에 손을 대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그의 친구 란트하르팅거(B. Randhartinger ; 1802∼1893)가 전하는 이야기를 대충 간추려 소개한다. 어느 날 슈베르트는 그의 친구 란트하르팅거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그는 외출하고 없었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하는 수 없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얼핏 책상 위를 보니 읽다가 두고 간 시집 한 권이 있었다. 그것은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 1794∼1827)의 시집인데, 란트하르팅거는 스스로 작곡해 볼 양으로 그것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슈베르트는 무심코 그 책장을 넘기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단박에 그 내용이맘에 들어서 그 시에 곡을 붙이려고 친구에게 말도 없이 그 시집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튿날 란트하르팅거가 슈베르트를 찾아갔더니, 벌써 그중 3편의 시에 곡이 붙여져 있었다. 슈베르트는 무단히 책을 들고 온 것을 사과하면서 작곡한 것을 들려 주었다고 한다. 뮐러는 33세로 요절(夭折)한 베르린 대학 출신의 서정시인으로서 김나지움의 교사 등을 지냈다. 그는 후기낭만파 시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고, 소박하고도 참신(斬新)한 서정성으로 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슈베르트를 그토록 홀린 시집은 1816년에서 20년에 걸쳐 쓴 그의 초기작품이며, 1821년에「발트호른 주자의 유고(遺稿)시집」제1부로서 출판된 것이다. 이 시집은 25편의 시로써 이뤄져 있는데, 슈베르트는 그 중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에 3편의 시를 제외한 20편의 시에 곡을 달았다. 또 제목과 가사의 일부를 고쳤을 뿐, 슈베르트는 거의 원시에 따르고 있다. 작곡에 착수한 것은 그해 5월이었지만, 오페라 「피에르브라스」의 작곡에 바빴고 또 건강을 잃고 입원한 일도 있어서 완성된 것은 11월이었다. 같은 해에 슈베르트는「피아노 소나타 a단조, 작품 143」,「로자문데의 음악」, 가곡「물위에서 노래함」등을 작곡하였다. 이 연가곡집「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특색은 이미 설명한 바와같이 일관된 이야기식(式)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분공(製粉工)으로서 도제(徒弟)과정을 마친 한 젊은이가 독립된 장인(匠人)으로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수업여행(修業旅行)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다가 어떤 냇가에 있는 물방앗간에 취직하여 그 집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온 정성을 다 바치지만, 그 아가씨는 잘생긴 사냥꾼에게 끌리므로 젊은이는 실연(失戀)하고 만다. 괴로움을 겪은 뒤에 그는 냇물에 몸을 던져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 이것이 대충 줄거리다.
이 가곡집에도 앞에서 열거한 슈베르트의 가곡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피아노 반주부에는 이 이야기의 배경을 이루는 냇물의 음형이 바그러의 라이트모티프〔示導動機〕처럼 일관하여 흐르고 있다. 또 유절형식(有節形式)으로 씌어진 노래가 많은 것도 이 가곡집의 특색이며, 소박한 젊은이의 사랑의 애환(哀歡)을 노래함에 알맞은 성격이라 하겠다. 이 가곡집은 1824년에 작품번호 25로 출판되었는데,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미성(美聲)의 테너인 카를 센슈타인 남작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전곡이 콜리우스 슈톡하우젠에 의해 초연된 것은 1856년 - 곡이 완성된 33년 뒤의 일이었다. 여기서는 본래의 테너와 약간 낮게 조옮김한 바리톤의 노래를 비교해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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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節)의 유절형식으로 씌어졌는데, 이 연가곡의 서두를 장식하기에 알맞는 경쾌하고 소박한 노래다. 여행의 즐거움과 이제부터 길을 떠나려는 젊은이의 기대에 찬 심정이 그려져 있다. 피아노의 반주부에는 냇물의 흐름을 나타내는 음형이 쓰여 있다. 이 곡은 뮐러의 원시에서는「타향벌이」로 되어 있는데, 슈베르트가 짐짓「방랑」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슈베르트의 애착, 방랑에 대한 특별한 의미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가사의 대의.
냇물을 따라 먼길을 떠나는 젊은이의 기대가 부드럽게 노래된다. 피아노의 오른손은 줄기차게 6연음부(六連音符)로써 냇물의 흐름을 나타낸다. 마지막에 길게 뽑는 부분은 헤어짐을 나타내는 듯하다. 통작형식(通作形式)인데 이곡집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의 하나다. 가사의 대의.
특히
두드러진 노래는 아니지만 장면 전환으로서 효과적으로 씌어 있다. 통작형식인데, 반주 저음부에서는 계속 물레방아의 회전이 묘사된다. 가사의 대의.
젊은이는 여기서 일을 익히려고 결심한다. 아름다운 아가씨도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데려다 준 냇물에게 감사한다. 통작형식. 반주는 느릿하게 냇물 흐름을 그린다. 가사의 대의.
묘사적으로
된 3부형식의 노래. 일을 마치고 노변(爐邊)에 모여 앉은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 심리를 그린 한 폭의 그림같다. 전주(前奏)에서의 화음의 연타(連打), 중간부에서 젊은이가 자기 힘이 약함을 한탄하는 대목, 마지막에 물레방아의 회전이 멈추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가사의 대의.
역시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가씨의 본심을 알고자 하는 젊은이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절박한 비통감(悲痛感)보다는 서정이 강해서 아주 조용한 가락으로 일관한다. 중간부「'예스'냐 '노'냐가 알고 싶은 전부다」부분은 레치타티보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4절로 된 유절가곡인데, 사랑하는 젊은이의 마음을 노래한 아름다운 명가(名歌)로서 자주 단독으로도 노래 불린다. 젊은이의 심장의 두근거림을 나타낸 듯한 3연음부(三連音符)의 다그친 반주가 아주 인상적이다. 「내 마음은 영원히 너의 것」이라는 부분에서 선율은 최고조에 달한다. 가사의 대의.
단순 소박한 노래. 마지막 부분의 아름다운 선율은 한 마디 쳐져서 뒤쫓는다. 4절로 된 유절가곡으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이 곡도「제8곡」과 마찬가지로 단순 소박한 노래다. 4절의 유절가곡 인데. 기복이 별로 없이 미끈하고 쉬운 선율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이 곡집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노래다. 두 남녀가 함께 지나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차분히 정경까지 묘사한다. 이쯤되면「방랑」에서 비롯된 것과는 딴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4절의 유절가곡이지만, 마지막 절은 단조(短調)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앞의 곡에서 크게 비약한다. 이 곡집 가운데서 가장 힘찬 노래다. 우쭐대는 기분으로 덩실대며 노래한다. 사랑을 확신하는 젊은이의 행복감을 맘껏 노래한 3부형식의 곡. 가사의 대의.
이 곡집 가운데서 가장 치밀한 구성을 가진 노래다. 분위기는 급전하여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 뭉클 솟는다. 반주의 첫 마디 운명은 현(絃)을 쥐어뜯는 듯한 울림인데, 이 곡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이 곡도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여기서부터는 젊은이의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선다. 중간부에서 잠깐 단조로 바뀌는 대목이 더욱 그런 감을 돋운다. 통작형식. 가사의 대의.
다시 노래는 소박한 민요 가락으로 바뀐다. 3절의 유절가곡인데, 선율은 명쾌하고 생기있다. 가사의 대의.
젊은이가
사랑에 취하고 있을 때 강력한 적이 나타난다. 무뚝뚝한 피아노 반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웬지 마구 휩쓸 새로운 성격의 출현을 예감케 한다.
2절의 유절가곡인데, 아주 리듬이 빠르고 가사도 요설(饒舌)스러워진다. 가곡이라기보다 오페라의 격한 대화 같다. 가사의 대의.
젊은이는 냇물을 향해 갈대 같은 여심(女心)을 한탄한다. 질투하는 것이다. 피아노 반주에서 냇물이 묘사되지만, 잘게 저미는 그 리듬은 전에 없이 격렬하다. 노래는 갑자기 실의(失意)의 표정이 짙어진다. 끝에 가서 장조(長調)로 바뀌는 대목에서 노래는 한층 격해진다. 통작형식. 가사의 대의.
젊은이의 실연은 결정적인 것이 된다. 젊은이는 그녀가 좋아하는 녹색 풀 밑에 묻히고자 한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담은 노래다. 이미 전주(前奏)에서부터 방심상태의 텅 빈 기분이 묘사된다. 노래 선율을 시종일관 받쳐주는 피아노의 F# 음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3절의 유절가곡. 가사의 대의.
사랑을 잃은 젊은이에게 있어서 아가씨가 좋아하는 색깔은 더 볼 수 없다. 녹색이 없는 곳으로 가고자 한다. 감상보다도 결의(決意)가 느껴지는 강한 가락을 지닌 노래다. 전주부터가 과단성이 있다. 대해 놓고 말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아듀」〔잘있거라〕를 외치면서 사라지는 데에 이 주인공의 특이한 성격이 있고, 음악도 그것을 휼륭히 포착하고 있다. 끝부분은 처절(悽絶)하기 이를 데 없다. 통작형식의 가곡. 가사의 대의.
심심(深深)한 정감을 담은 아름다운 노래다. 차분히 가라앉은 슬픈 표정 속게 면면히 노래한다. 내년 봄에 헛된 희망을 거는 대목에서 E장조로 바뀌어서 감미로운 꿈을 더듬는다. 마지막에 다시 단조(短調)로 바뀌고, 장송행진곡 같은 가락으로 꺼지듯 끝난다. 통작형식. 곡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의 하나다. 이 곡집이 완성된 이듬해에, 슈베르트는 이 노래의 선율을 써서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시든 꽃에 의한 서주(序奏)와 변주곡」을 지었다. 가사의 대의.
이 노래는 슬픔에 젖은 젊은이의 애가(哀歌)와 평화로운 고요를 찬미하는 냇물의 노래와의 대화다. 그리고 냇물의 노래 대목부터는 이제까지 없었던 상냥한 음의 반주가 다른다. 솔직함과 우아함이 잘 조화된 노래다. 통작가곡인데 후주(後奏)가 아주 인상적이다. 가사의 대의.
이것은 냇물의 위로도 보람없이, 냇물에 몸을 던져 죽은 젊은이에 대한 만가(輓歌)다. 이 가곡집의 마지막을 마무림에 알맞는 아주 담담(淡淡)한 표정이 정말 슈베르트답다. 냇물의 부드러운 구원이 있음으로써 이 가곡집의 성격은 다음의「겨울 나그네」와 판연히 다르다. 5절의 유절가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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