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Schubert, Franz Peter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Op.25 D.795

 

    

  

 

슈베르트를 가리켜 「 가곡 (歌曲)의 왕」이라고 한다. 그는 불과 31세의 생애 동안에 실로 1000곡 이상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가곡이 603곡이나 된다. 단지 숫자로서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는 민요에서 약간 벗어난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던 가곡(Lied)이라는 장르를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오늘날 가곡의 역사를 말함에 있어서, 참된 의미에서 슈베르트를 그 조상(祖上)이라고 말해서 망발은 아닐 것이다.

독일의 이웃인 프랑스에서는 옛날부터 샹송(Chanson)이라든가 멜로디(Melodie)라는 예술적 가곡이 많이 창작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기악적(器樂的)인 음악이 주류를 이룬 나머지, 예술적인 가곡이 태어날 수 있는 배경은 18세기 후반까지는 전혀 조성되어 있지 못했다. 그것이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조건이 성숙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곡가 쪽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괴테나 실러 같은 뛰어난 시인들이 잇따라 훌륭한 시들을 내놓음으로써 그 기운(機運)이 무르익어 갔던 것이다.

무릇 가곡의 작곡에는 풍부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천분(天分)과, 시가 표현하는 세계에 대한 예민하고도 섬세한 감각을 지닌 천재가 필요하다.

1797년,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가 죽은지 6년, 베토벤이 비인에 나와서 신진작곡가로서 지반을 굳히고 있던 때인데, 이 해에 비인 거리에서 태어난 프란쯔 슈베르트야말로 독일 가곡에 대한 독특한 사명과 천부(天賦)의 재능을 타고난 가곡의 대 천재였다.

슈베르트는 1811년(14세)에 「하가르의 한탄」이라는 노래를 지었다. 구약성서(舊約聖書)창세기 제16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의 시녀 하가르의 이야기를 담은 긴 가곡인데, 이것이 그의 처녀작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훨씬 이전에 쓴 것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것들은 모두 파기(破棄)되었다. 이 처녀작 이후에 슈베르트는 실러나 괴테의 시를 중심으로 죽던해인 1828년까지의 불과 18년 동안에 603곡의 가곡을 지었던 것이다. 슈베르트의 재능이 얼마나 일찍 나타났느냐 하는 것은 17세 때 「물레 잣는 그레트헨」,그이듬해에 「마왕(魔王)을 각각 작곡한 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

그러면 그토록 높은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 슈베르트의 가곡은 어떠한 특색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첫째로 시와 음악의 합일(合一)이다. 슈베르트는 시에 쓰여진 언어의 뉘앙스를 아주 정확히 포착해서 음악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슈베르트의 가곡을 원래의 독일어 이외의 외국어로 고쳐서 부를 때는 그 가사와 음악의 긴밀한 연관이 깨어지고 만다. 그래서 연주회에서는 원어(原語)대로 부르는 것이 통례이다.

둘째로 반주에 단지 하모니를 보강할 뿐만 아니라 시 전체의 기분을 표현코자 한 점이다. 예컨대 「물레잣는 그레트헨」에서는 피아노의 오른손에 줄곧 물레가 빙글빙글 도는 듯한 음형(音型)을 치게 하고 있으며, 연가곡집「겨울 나그네」의 유명한「보리수(菩提樹)」에서는 전주(前奏)와 후주(後奏)에 보리수 잎이 부시럭거리는 음형이 나타나는 따위다. 이처럼 반주 피아노에 중요한 구실을 하게 한 것은 슈베르트의 커다란 공적이다.

셋째로 그 선율의 다양성(多樣性)과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비인의 자연처럼 소박하고 청순(淸純)하며, 설사 가사나 반주에서 분리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써 충분히 우리를 감동케 만드는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색을 지닌 슈베르트의 가곡 가운데에는「마왕」이나「들장미」처럼 단독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연 가곡집「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처럼 아예 처음부터 정돈된 가곡집으로 씌어진 것도 있다. 이것과 연가곡집「겨울 나그네」 및 연가곡집「백조의 노래」를 총칭하여 슈베르트의「3대 연가곡집」이라 부르고 있다. 가곡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의 위대성은 이「3대 연가곡집」에 모두 집약(集約)되어 있다고 말해서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이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1823년 그의 나이 26세 때 작곡된 것이다, 몇곡의 가곡을 짝지어서 작곡한다는 일은 이미 베토벤의 「먼곳의 애인에게」라는 선례(先例)가 있긴 하지만, 이 가곡집처럼 일관된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모은 것〔連作〕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래서「연(連)」자를 앞에 얹어서「연가곡집」이라 구별지어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나중에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죽음의 병상(病床)에서 이 연가곡집의 소식에 접한 베토벤은「슈베르트에게는 성스러운 불꽃이 있다」고 격찬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슈베르트가 이 가곡집에 손을 대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그의 친구 란트하르팅거(B. Randhartinger ; 1802∼1893)가 전하는 이야기를 대충 간추려 소개한다.

어느 날 슈베르트는 그의 친구 란트하르팅거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그는 외출하고 없었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하는 수 없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얼핏 책상 위를 보니 읽다가 두고 간 시집 한 권이 있었다. 그것은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 1794∼1827)의 시집인데, 란트하르팅거는 스스로 작곡해 볼 양으로 그것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슈베르트는 무심코 그 책장을 넘기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단박에 그 내용이맘에 들어서 그 시에 곡을 붙이려고 친구에게 말도 없이 그 시집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튿날 란트하르팅거가 슈베르트를 찾아갔더니, 벌써 그중 3편의 시에 곡이 붙여져 있었다. 슈베르트는 무단히 책을 들고 온 것을 사과하면서 작곡한 것을 들려 주었다고 한다.

뮐러는 33세로 요절(夭折)한 베르린 대학 출신의 서정시인으로서 김나지움의 교사 등을 지냈다. 그는 후기낭만파 시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었고, 소박하고도 참신(斬新)한 서정성으로 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슈베르트를 그토록 홀린 시집은 1816년에서 20년에 걸쳐 쓴 그의 초기작품이며, 1821년에「발트호른 주자의 유고(遺稿)시집」제1부로서 출판된 것이다.

이 시집은 25편의 시로써 이뤄져 있는데, 슈베르트는 그 중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외에 3편의 시를 제외한 20편의 시에 곡을 달았다. 또 제목과 가사의 일부를 고쳤을 뿐, 슈베르트는 거의 원시에 따르고 있다.

작곡에 착수한 것은 그해 5월이었지만, 오페라 「피에르브라스」의 작곡에 바빴고 또 건강을 잃고 입원한 일도 있어서 완성된 것은 11월이었다. 같은 해에 슈베르트는「피아노 소나타 a단조, 작품 143」,「로자문데의 음악」, 가곡「물위에서 노래함」등을 작곡하였다.

이 연가곡집「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특색은 이미 설명한 바와같이 일관된 이야기식(式)줄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분공(製粉工)으로서 도제(徒弟)과정을 마친 한 젊은이가 독립된 장인(匠人)으로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수업여행(修業旅行)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다가 어떤 냇가에 있는 물방앗간에 취직하여 그 집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다. 그는 온 정성을 다 바치지만, 그 아가씨는 잘생긴 사냥꾼에게 끌리므로 젊은이는 실연(失戀)하고 만다. 괴로움을 겪은 뒤에 그는 냇물에 몸을 던져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 이것이 대충 줄거리다.

    1. Das Wandern  방랑

    2. Wohin  어디로

    3. Halt!  멈춰라

    4. Danksagung an den Bach  시냇물에의 감사

    5. Am Feierabend  일을 마치고

    6. Der Neugierige  호기심이 강한 사내

    7. Ungeduld  초조

    8. Morgengruss  아침 인사

    9. Des Mullers Blumen  물레방앗간의 꽃

    10.Tranenregen  눈물의 비

  11. Mein!  나의 것

  12. Pause  휴식

  13. Mit dem grunen Lautenbande  초록빛 리본으로

  14. Der Jager  사냥꾼

  15. Eifersucht und Stolz  시샘과 자랑

  16. Die liebe Farbe  좋아하는 빛깔

  17. Die bose Farbe  싫어하는 빛깔

  18. Trockne Blumen  시든 꽃

  19. Der Muller und der Bach  물레방앗간 사나이와 시냇물

  20. Des Baches Wiegenlied  시냇물의 자장가

이 가곡집에도 앞에서 열거한 슈베르트의 가곡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피아노 반주부에는 이 이야기의 배경을 이루는 냇물의 음형이 바그러의 라이트모티프〔示導動機〕처럼 일관하여 흐르고 있다. 또 유절형식(有節形式)으로 씌어진 노래가 많은 것도 이 가곡집의 특색이며, 소박한 젊은이의 사랑의 애환(哀歡)을 노래함에 알맞은 성격이라 하겠다. 

이 가곡집은 1824년에 작품번호 25로 출판되었는데, 슈베르트의 친구이자 미성(美聲)의 테너인 카를 센슈타인 남작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전곡이 콜리우스 슈톡하우젠에 의해 초연된 것은 1856년 - 곡이 완성된 33년 뒤의 일이었다.

여기서는 본래의 테너와 약간 낮게 조옮김한 바리톤의 노래를 비교해서 들어보자.

     

   

  제 1곡 「방랑(放浪)」Das Wandern

 테너 

 바리톤

 

 5절(節)의 유절형식으로 씌어졌는데, 이 연가곡의 서두를 장식하기에 알맞는 경쾌하고 소박한 노래다. 여행의 즐거움과 이제부터 길을 떠나려는 젊은이의 기대에 찬 심정이 그려져 있다. 피아노의 반주부에는 냇물의 흐름을 나타내는 음형이 쓰여 있다.

 이 곡은 뮐러의 원시에서는「타향벌이」로 되어 있는데, 슈베르트가 짐짓「방랑」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슈베르트의 애착, 방랑에 대한 특별한 의미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가사의 대의.

「방랑은 방앗군의 즐거움. 방랑을 모르는 방앗군은 풋내기 방앗군이다.
      물 흐름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밤낮을 쉬지 말고 오직 편력(遍歷)하라고.
         물레방아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가루 빻는 돌은 무겁기도 하지만,
            나란히 즐겁게 춤추는구나.
   방랑은 나의 즐거움, 주인님도 마님도 평화스러운 여행으로 나를 보내 주오.」

   

   

  제2곡 「어디로」Wohin?

 테너 

 바리톤

 

 냇물을 따라 먼길을 떠나는 젊은이의 기대가 부드럽게 노래된다. 피아노의 오른손은 줄기차게 6연음부(六連音符)로써 냇물의 흐름을 나타낸다. 마지막에 길게 뽑는 부분은 헤어짐을 나타내는 듯하다. 통작형식(通作形式)인데 이곡집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의 하나다.

   가사의 대의.

「바위틈에서 골짜기로 졸졸 흘러내리는 냇물 소리를 나는 듣는다.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팡이가 가리키는 대로 물줄기를 따라 가면
            냇물은 더욱 맑다.
   이것이 내 갈 길인가? 냇물아, 어디로 가는지 말하여 주렴.
       너의 속삭임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마치 물의 요정(妖精)의 노래 소리 같구나.
         노래하라, 벗이여 ! 즐거운 여행을 계속하자. 냇물이 가는 곳에 물레방아가 있다.」

   

   

  제3곡 「멈춰라」Halt!

 테너 

 바리톤

 

 특히 두드러진 노래는 아니지만 장면 전환으로서 효과적으로 씌어 있다.

 통작형식인데, 반주 저음부에서는 계속 물레방아의 회전이 묘사된다.

   가사의 대의.

「오리나무 사이로 물레방아가 보인다. 물소리와 노래 소리에 섞여 물레도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운 물레방아의 노래, 그 밝은 창문. 태양은 밝게 비친다.
         냇물이여, 네가 나를 데려오려던 곳이 여기냐?」

   

    

  제4곡 「냇물에의 감사」Danksagung an den Bach

 테너 

 바리톤

 

 젊은이는 여기서 일을 익히려고 결심한다. 아름다운 아가씨도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데려다 준 냇물에게 감사한다. 통작형식. 반주는 느릿하게 냇물 흐름을 그린다.

   가사의 대의.

「냇물이여, 너의 노래는 이런 뜻이었던가. 아가씨에게 데려오는 일이었던가.
      아가씨가 너를 심부름 보냈는가. 네가 날 희롱삼아 꾀어 왔는가.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찾던 것이 여기 있는데……
            찾던 일이 있고, 내 팔도 내 마음도 그걸로 만족하다.」

   

    

  제5곡 「쉬는 저녁」Am Feierabend

 테너 

 바리톤

 

 묘사적으로 된 3부형식의 노래. 일을 마치고 노변(爐邊)에 모여 앉은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 심리를 그린 한 폭의 그림같다.

 전주(前奏)에서의 화음의 연타(連打), 중간부에서 젊은이가 자기 힘이 약함을 한탄하는 대목, 마지막에 물레방아의 회전이 멈추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가사의 대의.

「만약 나에게 팔이 천개 있다면, 물레방아를 맘껏 돌려낼 힘이 있다면,
      숲을 휩쓸고 돌덩이를 모조리 돌릴 만한 힘이 있다면,
         아름다운 아가씨는 내 마음을 알아주련만……
   아, 내 팔은 약하다. 뭣을 해도 장인(匠人)을 따르지 못한다.
      조용하고 서늘한 저녁, 모두 둘러앉아 쉴 때 주인은'수고했네'라고 위로하고,
         귀여운 아가씨는 '안녕' 하고 인사한다.」

   

   

  제6곡「알고 싶은 마음」Der Neugierige

 테너 

 바리톤

 

 역시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가씨의 본심을 알고자 하는 젊은이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절박한 비통감(悲痛感)보다는 서정이 강해서 아주 조용한 가락으로 일관한다. 중간부「'예스'냐 '노'냐가 알고 싶은 전부다」부분은 레치타티보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꽃에도 별에도 묻지 않으련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대답해 줄 리가 없으니까.
      나는 정원사(庭園師)도 아니요, 별은 너무 높으니까 차라리 냇물에 물어보자.
         이것은 내 마음이 방황하고 있는 때문이냐고……
   오, 사랑하는 냇물이여 !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뿐인데,
      왜 오늘은 말없이 흐르기만 하는가. '예스'냐 '노' 냐가 알고 싶은 전부다.
         사랑하는 냇물이여. 왜 너는 그토록 변해 버렸지?
            저 아가씨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가르쳐 다오.」

   

   

  제7곡 「초조한 마음」Ungeduld

 테너 

 바리톤

 

 4절로 된 유절가곡인데, 사랑하는 젊은이의 마음을 노래한 아름다운 명가(名歌)로서 자주 단독으로도 노래 불린다. 젊은이의 심장의 두근거림을 나타낸 듯한 3연음부(三連音符)의 다그친 반주가 아주 인상적이다. 「내 마음은 영원히 너의 것」이라는 부분에서 선율은 최고조에 달한다.

   가사의 대의.

「모든 나무, 모든 돌에 새기리라. 모든 밭에 씨를 뿌려 글자를 쓰리라.
         모든 흰 종이에 적으리라. '내 마음은 영원히 너의 것'이라고.  
      지빠귀새 에게 말을 가르쳐서, 나 대신 그녀의 창가에서 노래부르게 하리라.
            아침 바람에 내 마음을 실어서, 숲의 속삭임이 되게 하리라.
         오, 별빛에 실어서 그대에게 전하고 싶다.
               냇물이여, 너는 물레방아를 돌리는 일밖에 못하는가.
            눈에도, 볼에도, 입가에도, 한숨에도, 이 가슴의 초조감은 나타나 있으련만,
                  그녀는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제8곡 「아침 인사」Morgengruss

 테너 

 바리톤

 

 단순 소박한 노래. 마지막 부분의 아름다운 선율은 한 마디 쳐져서 뒤쫓는다. 4절로 된 유절가곡으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밤새 안녕, 아름다운 아가씨여.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듯,
      그대는 얼굴을 숨기는데, 내 인사가 싫은 것일까. 멀리서 그대 창문을 지켜보리라.
         블론드의 머리여, 얼굴을 보여 다오.
   아침의 푸른 별이여, 조는 듯한 눈동자, 이슬에 젖은 꽃잎이여,
         왜 햇빛을 두려워하는가. 밤이 너무 좋아 몸을 숨기고 혼자 울고 있는가.
      꿈의 비단을 벗어 던지고 상쾌한 아침 햇살을 보라.
            종달새는 하늘에서 지저귀고, 사랑은 마음속에서 괴로움과 슬픔을 부르고 있다.」

   

   

  제9곡 「물방앗간의 꽃」Des Mullers Blumen

 테너 

 바리톤

 

 이 곡도「제8곡」과 마찬가지로 단순 소박한 노래다. 4절의 유절가곡 인데. 기복이 별로 없이 미끈하고 쉬운 선율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냇가에 많은 꽃들이 푸른 눈동자처럼 피어 있다. 냇물은 방앗군의 친구요,
        연인의 눈동자는 밝고 푸르게 빛나고 있다. 그러니까 저것은 내 꽃이다.
     그녀의 창 밑에 저 꽃을 심자. 언저리가 조용해지고 그녀가 잠들 때,
         그녀에게 말해 다오. 그러면 내 마음이 그녀에게 사무치겠지.
       그녀가 눈을 감고 깊이 잠들면, 꿈속에서 말해다오.
           '나를 잊지 말아요' 라고. 그것이 내 마음이다.
         아침에 그녀가 창문을 열면,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봐 다오.
             네 위에 잠자는 이슬은 내 눈물, 너희들에게 뿌리는 내 눈물인 것을…」

   

   

  제10곡 「눈물의 비」Tranenregen

 테너 

 바리톤

 

 이 곡집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노래다. 두 남녀가 함께 지나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피아노 반주는 차분히 정경까지 묘사한다. 이쯤되면「방랑」에서 비롯된 것과는 딴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4절의 유절가곡이지만, 마지막 절은 단조(短調)로 되어 있다.

   가사의 대의.

「우리는 서늘한 냇가, 오리나무 그늘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발밑을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뜨고 별도 반짝여서, 은빛 수면에 얼룩지는 것을 같이 보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달도 별도 아니다. 그녀의 모습과 눈동자였다.
     반짝이는 수면을 통해, 고개를 끄덕이고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았다.
       냇가의 푸른 꽃도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하늘의 빛은 냇물 속에 가라앉고, 나까지 그 속에 끌어넣고 있다.
     냇물 위에는 구름과 별이 비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로 오라고 눈짓한다.
       눈에 눈물이 넘쳐 나서 물위의 빛이 흔들린다.
         그녀는 '비가 내리니까 집으로 가겠어요. 안녕 ! ' 하였다.」

   

   

  제11곡 「내것」Mein!

 테너 

 바리톤

 

 앞의 곡에서 크게 비약한다. 이 곡집 가운데서 가장 힘찬 노래다. 우쭐대는 기분으로 덩실대며 노래한다. 사랑을 확신하는 젊은이의 행복감을 맘껏 노래한 3부형식의 곡.

   가사의 대의.

「냇물이여, 조잘대지 말라. 물레방아야, 소리를 내지 말라.
     숲속의 쾌활한 새들아, 너희들도 노래를 그쳐라.
       오늘은 숲속에서 한 가지만 노래하라. '사랑하는 그 아가씨는 내것이다'라고.
     봄이여, 네 꽃은 모두 그것뿐인가. 태양이여, 네 빛은 더 이상 밝지 못한가.
       아, 행복의 말귀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넓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제12곡 「휴식」Pause

 테너 

 바리톤

 

 이 곡집 가운데서 가장 치밀한 구성을 가진 노래다. 분위기는 급전하여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 뭉클 솟는다. 반주의 첫 마디 운명은 현(絃)을 쥐어뜯는 듯한 울림인데, 이 곡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다. 이 곡도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여기서부터는 젊은이의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선다. 중간부에서 잠깐 단조로 바뀌는 대목이 더욱 그런 감을 돋운다. 통작형식.

   가사의 대의.

「라우테〔竪琴〕에 녹색 리본을 매어 벽에 걸었다.
       가슴이 벅차서 더는 노래 부르지 못하겠고, 어떻게 시를 지을지조차 모르겠다.
     뜨거운 마음은 노래를 달랬고, 그것은 감미롭고 상쾌했다.
         그때의 쓰라림은 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행복은 동시에 무거운 짐.
       이 세상에는 부를 노래도 더는 없다. 라우테여, 쉬고 있거라.
           산들바람이 현(絃)에 스치고, 벌이 너를 건드릴 때, 내 마음은 설레인다.
         왜 나는 저 리본을 이토록 오래 달아 두었을까? 현에서 탄식 같은 소리가 난다.
             저것은 사랑의 고통의 여운(餘韻)일까, 새로운 노래의 전주(前奏)일까?」

   

   

  제13곡 「녹색 리본으로」Mit dem grunen Lautenbande

 테너 

 바리톤

 

 다시 노래는 소박한 민요 가락으로 바뀐다. 3절의 유절가곡인데, 선율은 명쾌하고 생기있다.

   가사의 대의.

「그 고운 녹색 리본, 벽에 걸린 채 바래는 것은 아까와요.
       녹색은 제가 좋아하는 색깔이에요.' 그녀는 말했다.
     곧 풀어서 그대에게 주지. 자, 그대가 좋아하는 녹색이야.
        흰색도 그대가 좋아하는 색깔이지만, 녹색도 좋은 색깔이어서 나도 좋아한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녹색이고 희망의 색깔이니까.
        자, 녹색 리본을 머리에 매어요. 그토록 녹색이 좋거들랑……
           그러면 내 희망이 깃든 곳도, 사랑이 깃든 곳도 알 수 있는 것을.
              녹색은 나의 가장 좋아하는색깔.」

   

   

  제14곡 「사냥꾼」Der Jager

테너 

 바리톤

 

 젊은이가 사랑에 취하고 있을 때 강력한 적이 나타난다. 무뚝뚝한 피아노 반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웬지 마구 휩쓸 새로운 성격의 출현을 예감케 한다. 2절의 유절가곡인데, 아주 리듬이 빠르고 가사도 요설(饒舌)스러워진다.

 가곡이라기보다 오페라의 격한 대화 같다.

   가사의 대의.

「사냥꾼이 뭣하러 방앗간에 왔는가. 너의 사냥터에 머물 일이지.
      여기에는 짐승도 없고, 나의 상냥한 새끼사슴뿐이다.
         그것이 보고 싶거든, 숲에 총과 개를 두고, 각적(角笛)도 불지 말고 오거라.
            내 뜰의 새끼사슴이 놀란다.
      그보다 더 좋기는, 숲에 가만히 엎드려 물레방앗간을 넘보지 않는 일이다.
         나무 가지에 고기가 있을 리 없고, 푸른 연못에 다람쥐는 살지 않으니까.
            어서 숲으로 돌아가거라. 만약 내 애인에게 잘 보이겠거든,
               뭣이 그의 캐비지 농사를 망치고 있으니, 그것부터 쏘아 다오.」

   

   

  제15곡 「질투와 자존심」Eifersucht und Stolz

 테너 

 바리톤

 

 젊은이는 냇물을 향해 갈대 같은 여심(女心)을 한탄한다. 질투하는 것이다.

 피아노 반주에서 냇물이 묘사되지만, 잘게 저미는 그 리듬은 전에 없이 격렬하다. 노래는 갑자기 실의(失意)의 표정이 짙어진다. 끝에 가서 장조(長調)로 바뀌는 대목에서 노래는 한층 격해진다. 통작형식.

   가사의 대의.

「사랑하는 냇물이여, 그토록 바삐 어디로 흘러가는가.
      저 건방진 사냥꾼에게 화가 나서 쫓아가는가.
         돌아가서 아가씨의 들뜬 마음부터 책망하거라.
      어젯저녁 그녀가 문간에서 목을 길게 뽑고 거리를 내다보는 꼴을 보았지.
         사냥꾼이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갈 때,
            품위 있는 아가씨라면 창문에서조차 얼굴을 안 내미는 법이야.
         냇물이여, 어서 가서 그렇다고 그녀에게 말해 주렴.
            허지만 나의 슬픈 표정일랑은 전하지 말고
               '그 사내는 냇가에서 갈대피리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고 전해 다오.」

   

   

  제16곡 「좋아하는 색깔」Die liebe Farbe

 테너 

 바리톤

 

 젊은이의 실연은 결정적인 것이 된다. 젊은이는 그녀가 좋아하는 녹색 풀 밑에 묻히고자 한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담은 노래다. 이미 전주(前奏)에서부터 방심상태의 텅 빈 기분이 묘사된다. 노래 선율을 시종일관 받쳐주는 피아노의 F# 음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3절의 유절가곡.

   가사의 대의.

「나는 녹색으로 몸을 사리라, 녹색 버드나무로. 그녀는 녹색을 좋아하니까.
      녹색 향나무의 숲, 녹색 로즈마린의 들을 찾아가리라. 그녀는 녹색을 좋아하니까.
    즐거운 사냥을 하러 가자, 숲과 벌판을 지나서. 그녀는 사냥을 좋아하니까.
       내가 쫓는 짐승은 죽음이다. 들판 이름은<사랑의 고민>이고……
          녹색잔디 아래 나를 묻어 다오, 그녀는 녹색을 좋아하니까.
       검은 십자가도, 색색의 꽃도필요없다. 오직 녹색만으로 물들여 다오.
          그녀는 녹색을 좋아하니까.」

   

   

  제17곡 「싫은 색깔」Die bose Farbe

 테너 

 바리톤

 

 사랑을 잃은 젊은이에게 있어서 아가씨가 좋아하는 색깔은 더 볼 수 없다. 녹색이 없는 곳으로 가고자 한다. 감상보다도 결의(決意)가 느껴지는 강한 가락을 지닌 노래다. 전주부터가 과단성이 있다. 대해 놓고 말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아듀」〔잘있거라〕를 외치면서 사라지는 데에 이 주인공의 특이한 성격이 있고, 음악도 그것을 휼륭히 포착하고 있다. 끝부분은 처절(悽絶)하기 이를 데 없다. 통작형식의 가곡.

   가사의 대의.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다, 만약 숲과 들에 녹색이 없다면.
       모든 나무가지에서 녹색 잎을 따서, 눈물로 죽음같이 창백하게 만들어 주리라.
     아, 싫은 녹색이여. 왜 뽐내듯 짓궂게 나를 보느냐, 이 불쌍하고 창백한 사나이를.
       바람, 비, 눈오는 날에 그녀의 문간에 몸을 두고, 밤이나 낮이나 몰래,
         단 한마디<안녕>이라고 노래하리라.
       들으라, 숲에서 사냥의 각적(角笛)이 울리면, 그녀의 창문이 열리고,
         그녀는 나를 못 보지만 나는 그녀를 볼 수 있다.
           아, 그대 이마에서 녹색 리본을 끌러다오. 안녕, 이별의 손길을 뻗어 다오.」

   

   

  제18곡 「시든 꽃」Trockne Blumen

 테너 

 바리톤

 

 심심(深深)한 정감을 담은 아름다운 노래다. 차분히 가라앉은 슬픈 표정 속게 면면히 노래한다. 내년 봄에 헛된 희망을 거는 대목에서 E장조로 바뀌어서 감미로운 꿈을 더듬는다. 마지막에 다시 단조(短調)로 바뀌고, 장송행진곡 같은 가락으로 꺼지듯 끝난다. 통작형식.

 곡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의 하나다. 이 곡집이 완성된 이듬해에, 슈베르트는 이 노래의 선율을 써서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시든 꽃에 의한 서주(序奏)와 변주곡」을 지었다.

   가사의 대의.

「그녀에게서 받은 꽃이여, 나와 함께 무덤에 들어가자.
       너희들은 내 꼴을 알고 있다는 듯이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는구나.
     너희들은 왜 그렇게 시들고, 눈물에 젖어 있느냐.
         아, 눈물조차 5월의 녹색을, 지나가 버린 사랑을 소생시키지는 못한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어 들에 꽃이 피어나도,
           그녀에게서 받은 꽃은 내 무덤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언덕을 헤매다가'그 남자는 진실했다'고 생각할 때가 오면,
           그때는 모두 활짝 피어나거라. 5월이 되고 겨울은 지났다.」

   

   

  제19곡 「방앗군과 냇물」Der Muller und der Bach

 테너 

 바리톤

 

 이 노래는 슬픔에 젖은 젊은이의 애가(哀歌)와 평화로운 고요를 찬미하는 냇물의 노래와의 대화다. 그리고 냇물의 노래 대목부터는 이제까지 없었던 상냥한 음의 반주가 다른다. 솔직함과 우아함이 잘 조화된 노래다.

통작가곡인데 후주(後奏)가 아주 인상적이다.

   가사의 대의.

 젊은이 --「성실한 자가 사랑으로 죽을 때, 온 세계의 백합꽃은 시들리라.
          만월(滿月)도 구름 속에 숨어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천사도 눈을 감을 것이며, 영혼은 안식을 찾아 울며 노래하리라.」

 냇물 --「그러나 사랑의 고민이 사라지고 새로운 별이 하늘에서 반짝일 때
          다시는 시들지 않는 장미 꽃송이가 가시덤불 속에서 피어나리라.
          그리고 천사는 날개를 접고 아침마다 대지에 내려오리라.」

 젊은이 --「아, 사랑하는 냇물이여, 그대는 친절도 하여라.
          하지만 그대는 사랑의 종말을 아는가?
          아, 물밑의 차가움이여! 냇물이여, 노래를 불러다오.」

   

   

  제20곡 「냇물의 자장가」Des Baches Wiegenlied

 테너 

 바리톤

 

 이것은 냇물의 위로도 보람없이, 냇물에 몸을 던져 죽은 젊은이에 대한 만가(輓歌)다. 이 가곡집의 마지막을 마무림에 알맞는 아주 담담(淡淡)한 표정이 정말 슈베르트답다. 냇물의 부드러운 구원이 있음으로써 이 가곡집의 성격은 다음의「겨울 나그네」와 판연히 다르다.

   5절의 유절가곡이다.

「눈을 감고 쉬라, 지친 나그네여. 그대는 이제 집에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는 진실이 있다. 냇물이 바다에 흘러드는 날까지 내 곁에서 쉬어라.
   부드러운 잠자리, 수정(水晶)의 방에서 선선하게 잠자라.
      흔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여기 와서, 이 사람을 내 곁에 재워 다오.
   녹색 숲에서 각적이 울리면 나도 일렁이리라. 푸른 꽃들이여, 들여다보지 말라.
      잠든 젊은이의 꿈을 건들이지 말라.
   저리 가거라, 심술궂은 아가씨야. 네 그늘이 젊은이의 조용한 잠을 깨우지 않도록.
      네 고운 손수건을 물위에 던져서 그의 눈을 가려 주자.
   잠들라. 모든 것이 눈뜰 때까지, 기쁨도 슬픔도 잠 속에서 잊으라.
      만월은 솟고 안개는 개었다. 저토록 높고 넓은 하늘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