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 아놀트  <Schonberg, Arnold>   (1874.9.13∼1951.7.13)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빈 출생. 12음기법의 창안으로 20세기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또 베르크, 베베른 등 많은 뛰어난 제자를 육성, 그들과 더불어 제2차 빈악파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하여 거의 독학으로 음악의 기초를 닦았다. 초기의 작풍은 연면(連綿)한 주정(主情)의 세계를 묘사하는 후기 낭만파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현악6중주곡 《정화된 밤:Verkl둹te Nacht》(작품 4, 1899),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잔데:Pelleas und Melisande》(작품 5, 1903) 《구레의 노래:Gurrelieder》(1900∼11) 등의 작품에서는 바그너와 말러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초기 작풍을 거치고 나서 조성(調性:tonality)의 틀에 박힌 음악에 질식감을 느끼게 된 그는, 마침내 이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가 《3개의 피아노 소품》(작품 11, 1909)에서 조성과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부터 12음기법을 고안하기까지를 ‘무조(無調)시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시기에 그는 《관현악의 5개 소품》(작품 16, 09)과 《달의 피에로 Pierrot lunaire》(작품 21, 12) 등의 걸작을 내놓았다. 12음기법은 조성조직(調性組織)을 대신하는 이론으로서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작품 25, 21)에서 이룩되었다. 이 무렵부터 비난의 대상이었던 그는 점차 인정받게 되어 25년에는 베를린의 예술아카데미의 교수로 초청되어 이듬해 베를린으로 이사하였다. 옛 도시 빈에서 나와 자유로운 베를린의 공기를 마시게 된 이 시기에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작품 31, 1928), 미완성 오페라 《모세와 아론 Moses und Aron》(32)을 작곡하여 그의 충실한 기량을 보였다.

그러나 나치스의 대두와 더불어 유대인이었던 그는 33년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그 후로는 미국에 영주하였다. 그는 만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히틀러에 대한 분노를 곁들인 《나폴레옹에로의 오드》(작품 41, 42)와 유대인 대량학살을 소재로 한 《바르샤바의 생존자》(작품 46, 47) 등은 특히 유명하다. 저서에 《화성악:Harmonie Lehre》(1911) 《작곡 초보자를 위한 범례:Models for Deginners in Composition》(40), 논문집 《스타일과 아이디어:Style and idea》(50) 《화성의 구조적 기능:Structural Functions of Harmoney》(5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