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에의 프랑스어인 '오부아'(hautbois : 프랑스어로 '높은 음을 내는 나무'라는 뜻)는 본래 실외 의식에서 사용되는 거칠고 강렬한 악기인 숌의 이름 중 하나였다. 그러나 관현악단 악기로서 본격적인 오보에는 17세기 중엽 2명의 프랑스의 궁정음악가 장 오트테르와 미셸 필리도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현악기와 함께 실내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질면에서 근대 오보에보다 부드럽고, 화려한 맛이 약하다.
17세기말경에 이르러 오보에는 당대의 주된 독주악기였던 바이올린의 뒤를 이어 관현악단과 군악대의 주요 관악기로 자리하게 되었다.
초기 오보에는 키가 2개밖에 없고, 음역도 가온 다(C)음 위 2옥타브에 불과했으나, 곧 그위 F음까지 확대되었다. 19세기초 음악 양식이 변하면서 동시에 목관악기의 키 장치가 몇 가지 개선되었고, 특히 키를 올려놓은 보조기둥을 나무대신 금속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키를 추가함으로써 나타났던 목관악기의 강한 공기압이 크게 개선되었다. 1839년 프랑스에서는 키가 점점 늘어나 모두 10개가 되었다. 1800년 이전의 프랑스의 오보에 연주자들은 이미 좁은 형태의 근대형 리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1860년대 기욤 트리에베르와 아들 프레데리크는 표현력이 풍부하고 유연하며, 특히 20세기 프랑스 오보에와 거의 일치하는 악기를 개발한 바 있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하는 오보에 형태인 손가락 구멍이 구멍 뚫린 판으로 덮인 오보에는 1906년 프랑수아 로레와 조르주 질레가 제작한 것이다. 프랑스 이외의 국가에서는 귀족의 음악 후원과 군악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쇠퇴함에 따라 연주와 제작 전통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일찍이 여러 개의 키를 지닌 오보에가 나타난 바 있으며, 강한 음량을 낼 수 있도록 관과 리드가 계속 개선되었다. 이 지역에서 오보에는 계속 무시되다가, 19세기말 주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노력으로 다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관이 큰 독일형 오보에는 큰 관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리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계속 실험한 끝에 1925년경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일반적으로 프랑스 오보에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오보에의 역사도 위와 비슷하다. 조그만 리드를 사용하는 독일 오보에는 소련에서 살아 남았는데 세련된 음질을 낼 수 있는 반면, 프랑스 오보에처럼 알차고 생기있는 소리는 없다. 빈에서는 독일 오보에와 비슷하지만 성격상 보다 구형(舊刑)에 가까운 오보에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이 악기의 절제되고 혼합적인 음색은 악기 자체의 특질이라기보다는 고도로 특별하게 만들어진 리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보에 연주의 주요요소는 리드 제작기술과 리드를 입술과 입으로 조절하는 기법이다. 대부분 전문 연주자들은 기성품 리드를 구입할 수 있는데도 스스로 리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리드는 대나무처럼 생긴 물대(Arundo donax)라는 식물로 만든다. 온대·아열대 지방에서 자라지만 프랑스 남부의 바르와 보클뤼즈 지방산만이 리드 제작에 적절하다.
오보에는 매우 다양한 변종 악기들이 있다. 코르 앙글레라고도 하는 잉글리시 호른은 오보에보다 5도 낮으며, J. S. 바흐의 오보에 다 카치아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오보에 다모레는 오보에보다 단3도 낮은 A조 악기로 나팔관이 잉글리시 호른처럼 공 모양 종으로 되어 있다. 이 악기는 바흐가 많이 사용했으며, 20세기에도 여러 작품에서 사용되고 있다. 오보에보다 한 옥타브 아래음으로 소리나는 악기는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그중에 바리톤 오보에인 오부아 바리통은 음색이 잉글리시 호른과 비슷하여 보다 큰 소리의 저음을 낸다. 헤켈폰은 리드와 관이 바리톤 오보에보다 크며, 저음역에서는 꽤 무거운 소리를 낸다. 그밖에 크기와 음높이가 다른 악기들이 가끔 나타나며 비유럽의 민속 겹리드 목관악기들도 총칭하여 오보에라고 한다.
롯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3부에서 나오는 오보에와 풀루트의 가락
Heinz Holliger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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