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프란츠 (1811-1886)
Franz Liszt
피아노의 왕
출생과 환경
헝가리의 피아노 연주자·작곡가. 라이딩 출생. 에스텔하지 후작의 토지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6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820년 프레스부르크에서 독주회를 가져 천재의 출현이라는 평을 받았다. 23년 빈으로 가서 K.체르니에게 사사하면서 A.살리에리에게서 작곡을 배우고, 다시 파리로 가서 파에르와 라이하로부터 화성(和聲)을 배웠다. 다음해 파리에서 데뷔한 후 프랑스 각지로 연주여행을 하였고, 런던에서도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27년 여행길에서 부친을 여의고 수년 동안은 고난의 시기였으나, 그 동안에 체험한 7월혁명(1830), 여제자 카롤린과의 사랑, 페티스, 쇼팽, 베를리오즈, 파가니니 등과의 교제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었다. 특히 파가니니와의 접촉으로 그의 연주는 종래 체르니의 스타일로부터 명기주의(名技主義)의 스타일로 전환하였다. 그 후 교향시 창조의 기반이 되는 문학적 교양을 쌓고, 6세 연상인 다구 백작부인도 이 무렵에 알게 되었다. 35년 리스트와 부인은 제네바로 가서 동거생활에 들어가, 두 사람 사이에서 브랑딘, 코지마, 다니엘 등 세 아이가 태어났는데, 코지마는 후에 바그너의 부인이 되었다. 그는 38년 빈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일대를 무대로 한 연주여행을 하였으며, 이것은 그가 바이마르에 정주(定住)한 47년까지 계속되었다. 47년 유럽 전역에 걸친 연주여행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리스트는 바이마르에 정주하였고, 그것은 동시에 여행 중에 알게 된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과의 새로운 생활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바이마르에서는 지휘자·작곡가·교육가·사회활동가로 폭넓게 활동하였으며, 지휘에서는 슈만·베를리오즈·바그너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창작면에서도 《3개의 연주회용 대연습곡》 《초절기교연습곡(超絶技巧練習曲)》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과 소나타·협주곡 등의 피아노곡, 《파우스트교향곡》 《단테교향곡》 《전주곡》 《타소》 《마제파》 《오르페우스》 《이상(理想)》 등의 교향시와 대표작을 연달아 내놓았다. 61년 후작부인과의 결혼식 때문에 로마로 갔으나 부인 친척의 이의(異議)로 실패, 그 후 부인은 종교생활에 들어가고, 리스트도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 동안 흑의(黑衣)를 두르게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작품에는 종교성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69년 로마에서 바이마르로 돌아와서는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리스트는 피아노 연주상의 명기주의의 완성과 표제음악의 확립이라는 음악사상 매우 중요한 공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편곡까지 포함하여 방대한 수에 이르며 악종도 다양한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은 《헝가리광시곡》과 《순례의 해》를 포함한 피아노곡과 교향시이다.
작품의 특징 리스트는 교양이 풍부하고 화술이 뛰어나며 출중한 용모를 가진 예술가였다.
음악에서도 당대의 일류 피아니스트로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작품에 있어서도 화려하고 표현력이 강하여 매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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