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 에드바르트 (Edvard Grieg) 1843-1912

생애와 작품
노르웨이의 작곡가·피아니스트. 베르겐 출생. 스코틀랜드
가계(家系) 출신, 어머니에게서 피아노의 기초를 익힌 뒤 1858년부터
4년간 라이프치히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R.슈만과 J.멘델스존의
영향을 받았으며, 게제·노르들라크 등 민족주의적인 작곡가들과
사귀면서 독자적 작풍을 확립하였다. M.입센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부대음악(附帶音樂) 《페르귄트》(1876년 초연)와 《피아노협주곡》(1868)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몸에 밴 고전적 형식에서 민족적인 음악을
찾으려고 애쓴 그는 《제3바이올린소나타》(1885∼87)에서 피아노곡인
《노르웨이의 농민무용》(1902)에 이르는 일련의 작품 속에 민족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많이 도입하였으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다수
만듦으로써 오늘날 노르웨이 음악의 대표적 존재가 되었다.
1843년 베르겐에서 출생.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음
1858년 라이프치히 음악원 입학 4년간 교육받음
1863년 덴마크의 멘델스존이라 불리는 가제와 친분을 갖고 격려와 도움을 받음
1864년 노르웨이의 신예 노르드라크와 사귀면서 큰 영향을 받음
장엄한 남성미 속에서 스칸디나비아 음악의 정신을 구현하려고함
1866년 오슬로로 거처를 옮긴후 73년 까지 작곡, 연주, 교수로서 다망한 생활을 함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이 리스트로 부터 찬사를 받은데 이어 점차 음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음
1874년 정부에서 1600크로네의 종신 연금지불 약속 이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
1877년 하르당게 피요르드 부근으로 이주하여 차분히 창작 활동에 몰두하려 했으나
외국으로부터 초청이 끊이지 않아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됨
1907년 노르웨이 고향에서 기력을 잃고 작고함
작품의 특징
조국음악의 기초를 확랍하고 예술적인 가치를 높이는데 헌신함.
그의 음악의 본질은 수많은 서정 가곡이나 피아노 소곡에서 찾을 수 있음.
섬세한 서정, 북구적인 웅장함과 심미감속에
직선적으로 파고드는 느르웨이의 민요의 아름다운 선율이 그의 음악을 잘 나타냄.
조국민요를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려는 그의 지나친 고집이 자칫 균형미를 잃게하는
경우도 있으나 작품전체의 노력의 흔적은 큰 감동을 전달해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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