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메론(Hexameron)이란 그리스어로 "6일간의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창세기의 6일간의 창조를 설명하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곡은 19세기 당시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 6인 즉, 리스트(Franz Liszt), 탈베르크(Sigimond Thalberg), 픽시스(Johann Peter Pixis), 헨리 헤르츠(Henri Herz), 체르니(Carl Czerny), 쇼팽(Frederic Chopin)이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에 나오는 행진곡을 주제로 6개의 변주곡으로 만든 공동작품이다. 다시말하면 19세기 중반부의 피아노계의 연주 기교가 집약된, 비르투오조 시대를 상징히는 작품으로서 피아노 연주사에서 보면 상당히 흥미있는 곡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는 별로 연주되지 않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교적으로 상당히 고난이도를 요구하는 점도 있고, 주제가 행진곡이지만 부점 리듬의 끝없는 반복으로 인한 리듬의 단조로움, 단 2개의 조성으로만 되어있는 화성의 단조로움, 그리고 참여 작곡가들의 의지 결여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다. 1835년 리스트가 스위스에 있을 때 파리에선 탈베르크라는 피아니스트가 굉장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 게 된 리스트는 탈베르크와 대결하기 위해 파리로 달려가 피아노 연주로서 대결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고 파리 음악계는 거의 두 편으로 갈라서서 리스트와 탈베르크를 지지하게 되었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화려했던 사교계의 주인이라 할 수 있었던 크리스티나 베르조오소 후작 부인이 이 흥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탈리아 난민을 위한 바자회에 이 두 젊은 피아니스트를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이 바자회에서 리스트는 파치니의 오페라 <니오베> 중에서 환상곡을, 탈베르크는 로시니 오페라 <모세> 중에서 환상곡을 연주했다. 결과적으로 1837년 3월 31일에 열린 자선 바자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첫 번째 바자회가 끝난 뒤 후작 부인은 두 번째 바자회에서 연주하기 위해 당시 활약하던 6명의 피아니스트가 참여하는 변주곡을 의뢰 하였는데 바로 이 곡이다. 크리스티나 베르조오소 후작 부인이 이탈리아 출신이었기에 이탈리아 작곡가인 벨리니의 곡을 주제로 선택하였고, 오페라 <청교도>의 행진곡이 <자유>에의 갈망을 노래하는 부분이었기에 후작 부인의 정치적인 성격과도 관련이 깊다고 여겨진다. 또한 벨리니의 오페라 대부분이 이탈리아에서 초연되었지만 이 <청교도>는 파리에서 초연되었다고 하니 여러 가지 배경이 있는 셈이다. 6명의 작곡가를 나이로 보면 픽시스(1788), 체르니(1791)가 나이가 많고 헤르츠(1803), 쇼팽(1810), 리스트(1811), 탈베르크(1812) 순이었다. 픽시스는 독일 출신으로 당시에는 비르투오조 및 피아노 교사로서 인기를 많이 끌었으며 전성기는 1830-1840년 경이라고 전해진다. 헤르츠는 비인 출신으로 파리음악원에서 수학하였고 동 음악원에서 30년간 교수직을 지냈으며 상당한 비르투오조로 명성을 쌓았다. 체르니 피아노 교본으로 잘 알려진 체르니는 리스트와 탈베르크의 스승이기도 하다. 6명의
공동 작품이다 보니 각각의 곡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없었다. 당연히 프로듀서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리스트가 맡았다.
리스트는 서주와 주제, 제2변주 그리고 피날레를 맡았으며 각각의 변주곡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간주곡도 집어 넣었다. 그래서 리스트의 헥사메론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곡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보는 바와 같이 곡의 중간 중간에 리스트가 간주를 넣었는데 이는 전체곡의 연결과 하나의 정리된 곡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대한 변주곡은 확실히 기교적인 면에서 보면 상당히 고난도의 곡으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탈베르크, 헤르츠, 체르니, 픽시스 등의 작품의 기교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는 곡이다. 하지만 베토벤이나 브람스 등의 변주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는 떨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쇼팽과 리스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곡가들의 수준이 좀 떨어지는 면도 있고 그나마 쇼팽은 의지 결여에, 리스트도 그리 심사숙고해서 만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조성이나 화성, 가락의 계획적인 변주가 아니라 6명의 피아니스트가 자기 나름의 변주곡을 만들어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단지, 음악사적으로 당시를 주름잡던 6명의 비르투오조가, 경쟁하기도 쉽지 않은데, 공동/합동으로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큰 의의가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곡은 리스트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고, 이후에 2대의 피아노를 위한 것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것으로 편곡하였다. 피아노의 기교만을 위한 감상이라면 피아노 독주곡을 , 조금은 예술적인 면을 느끼려면 피아노-오케스트라 버전을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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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은 리스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느리게 시작되고 리스트의 페러프레이즈에서 자주 나오는 저음의 트레몰로 이후 점차 고조되다가 빠른 템포의 화음의 연속, 양손 옥타브의 유니슨으로 스케일이 커지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여러 명의 작곡가가 공동 작곡한 스케일이 큰 호화로운 서주로 시작되는 듯 하나, 그리 매력적이지는 못한 도입부.
앞선 서주에서 양손 옥타브의 유니슨 다음에 연결되는 주제부로 가장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행진곡 풍의 편곡을 보여준다. 왼손의 옥타브 연습곡과 같은 모습에 약간 지루한 선율의 반복으로 단조로운 느낌이며, 그나마 양손 유니슨에 의한 카덴차 풍의 패시지가 있어 다행이다. 결정적으로 '노르마'의 행진곡 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선율이 문제...
왼손의 3도 화음의 연속으로 시작되지만, 곧 16분음표의 유려한 패시지가 연주된다. 왼손에 16분음표의 흐름이 오는 부분은 아름답고, 탈베르크가 주로 사용했던 '3손의 기술'도 조금 등장한다. 강조된 선율과 그 선율의 위아래로 달리는 화려한 장식을 느낄 수 있는 탈베르크 다운 변주.
리스트에 의한 약간 우울한 분위기의 단조의 변주. 왼손의 느린 아르페지오 속에 내성부가 나오는 부분이 인상적인 곡으로 제3변주부터 제5변주까지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변주가 계속되기 때문에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느린 분위기의 단조 곡을 넣은것 같다. 따라서 그리 두드러지지지는 않는다.
오른손은 옥타브의 움직임이 많고 도약을 포함한 두터운 회음으로 반주하고 있기 때문에 힘있고 화려한 스케일의 행진곡 풍의 변주이다. 중간에 도돌이표가 있지만 건너 뛰고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리스트는 제3변주 뒤에 10마디에 걸쳐 제4변주곡과의 자연스런 연결을 위하여 첫 번째 간주를 집어 넣었다.
왼손의 아르페지오 속에 주제가 나오며, 오른손의 화려한 16분음표의 수케일이 연속되는 곡으로 이 ,헥사메론. 변주곡에서 가장 연습곡 풍의 곡이다. 앞서 제3변주 뒤의 리스트의 강력한 간주곡 뒤에 오기 때문에 좀 더 우아하면서 물 흐르는 듯한 느낌이 더욱 두드러 진다. 여기도 도돌이표가 있다.
연습곡의 대명사인 체르니에 의한 변주곡. 화음을 포함한 화려한 패시지 및 양손의 아르페지오, 연속된 10도의 분산화음 6도 트릴, 내성부에 반음계의 움직임을 포함한 패시지 등은 체르니 기교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손가락 연습하기에 아주 알맞는 곡.
다음 쇼팽의 제6변주에 들어가기전 리스트는 다시 한번 연결을 위한 두 번째 간주곡을 집어 넣었는데 첫 번째 간주보다는 꽤 긴편이다. 이 부분도 서주 부분에 나오는 부점 리듬의 하강음형이 좌우 교대로 나오는 것일 뿐 단순한 선율로 기교를 보여주기 위한 부분으로 보이고 계속 빠른 템포였던 곳을 다음의 변주를 위해 템포를 느리면서 조용히 마친다.
쇼팽에 의한 Largo의 느린 변주로 왼손에 의한 넓은 음역의 아름다운 중음 아르페지오, 오른손의 멜로디, 역시 들려오는 화성은 쇼팽의 야상곡과 같은 분위기의 곡이다. 이 <헥사메론> 변주곡 중에서 유일하게 비기교적인(?) 예술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러나 쇼팽에 있어서 이 곡은 분명히 걸작이 아닌 약간의 졸작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약하다. 우선 한 페이지밖에 안되는 분량도 그렇고 왼손의 아름다운 아르페지오에 비해 오른손은 너무 평범하며, 벨리니의 원곡과 거의 변함이 없으며 쇼팽 특유의 섬세한 꾸밈음은 거의 없다. 쇼팽은 분명히 이 <헥사메론>에 참여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으며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상 제출일이 다가오자 대충 만들어서 제출한 느낌이다.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기 전 10마디 정도의 세 번째 간주를 리스트가 쓰고 있다.
피날레에서는 지금까지 나왔던 변주가 회상된다. 처음은 탈베르크에 의한 변주. 리듬이 변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탈베르크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다음은 피식스에 의한 변주로 테크닉적으로 변경된 부분이라면 중간부분에 왼손의 도약이 연속되는 부분이 나온다. 헤르츠에 의한 변주도 회상된다. 하지만 체르니, 쇼팽에 의한 변주 부분은 없는데 쇼팽의 변주부분이야 느린 야상곡과 같은 분위기여서 대곡을 종결짓는 파날레에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체르니의 변주가 빠져 있는 것은 이상하다. 하여간 곡은 왼손 옥타브 아르페지오를 타고 주제가 화려하게 등장하고 점차 템포가 빨라지면서 옥타브의 연속과 화음의 연속으로 이 거대한 곡을 웅장하게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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