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라브 넬리벨 Václav Nelhýbel (1919 - 1996) 

 

Trittico for wind band (11:11)
목관을 위한 트리티코 (3부작)

 

1. Allegro maestoso  2:51

2. Adagio           5:23

3. Allegro marcato   2:56

 

Frederick Fennell(지휘),  Ensemble Dallas Wind Symphony

 

Frederick Fennell (1914 – 2004)

Part 1 "우리는 그를 모른다"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프레드릭 펜넬(Frederick Fennell)의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작곡가 000, 세계적인 지휘자 000의 서거 소식은 신문, 방송, 또는 음악잡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데, 왜! 우리 관악의 세계적 지휘자 ‘프레드릭 펜넬’의 서거소식은 접하지 못한 것 일까? 관악은 아직까지 음악의 변방에 자리 잡아서.... 아직도 60,70년대의 '밴드부’의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서..... 현악이 아닌 관악이라서... 이도 저도 아니면 우리 관악은 관심 밖이라서.... 오케스트라는 현악과 관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관악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고, 앞으로는 관악을 위하여 무었을 할 수 있으며, 관악을 위하여 어떤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하는가? 우리 주위에서는 요즘 관악전공자와 아마추어 관악 동호인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가끔 일선 관악지휘자들에게 “좋아하는 작곡가, 존경하는 지휘자가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작곡가는 베토벤•모차르트•차이코프스키....” “음....지휘자는 캬라얀•솔티•번스타인•정명훈.....”  그러나 정작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관악분야의 위대한 작곡가와 지휘자를 말하라고 하면 말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정말 안타까운 마음과 체계적인 관악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프레드릭 펜넬(Frederick Fennell은 약어로 ff로 쓰며 음악용어 ‘포르테시모’(아주세게)와 동일하게 쓴다.^^)은 세계관악 발전을 위하여 90평생을 받쳤다.

-그의 대학 때 전공은 피아노•작곡•지휘전공이 아닌 큰북(Bass Drum)이었다.

-그의 지휘유학은   오스트리아 ‘짤츠브르크 음악페스티벌’에서 세계적인 지휘자의 지휘모습을 지켜 본게 지휘유학의 전부였다.

-그는 마칭밴드만 있던  미국에서 현재 세계 정상의 대학밴드로 인정받고 있는 ‘이스트만 윈드앙상블’을 창단하였다.

-그는 야외에서 군악대와 마칭밴드가 연주와 행진을 하고 있을때 윈드앙상블을 오케스트라 처럼 연주회장에서 음악회를 시도하였다.

-그는 군악대에서 행진곡 등을   연주하고 있을 때  창작 관악작품을 위촉하였고, 20장이 넘는 음반을 1950년대에 발매 하였다.

-그는 일본의 밴드 ‘동경교성취주악단’(Tokyo Kosei Wind Orchestra)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세계적인 관악합주단으로 발전 시켰다.

-그는  100장이 넘는 관악 음반을 남겼으며, 수많은 관악 작품을  편곡하여 현대적인 윈드오케스트라의 편성 과 레퍼토리를 발굴하였다. 현대 관악의 모든 것은 그의 발걸음으로 시작 되었다. 그가 바로  ‘프레드릭 펜넬’이다.

 

 

Part 2 "관악의 위대한 지휘자 프레드릭 펜넬 그를 말한다."

ff은  1914년 7월 2일 미국 ‘클리브랜드’ 에서 태어났다. 그는 7살 때부터 삼촌의 영향으로 타악기연주로 음악생활을 시작하였다. 1932년 음악캠프에서 미국 행진곡의 왕으로 불리는 수자(J. P. Sousa;1854~1932)가 지휘하는 밴드에서 베이스 드럼을 객원연주 하였다. ff은 스스로 “난 수자의 큰북 연주자다” 라고 말할 정도로 관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미국 관악의 명문 ‘이스트만 음악원’에서 타악기를 전공하였고, 1939년 음악이론으로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ff은 로체스터 대학의 미식축구팀을 위하여 이스트만 음악원의 관악전공자를 중심으로 마칭밴드를 결성하여 행진하였고, 경기 사이 사이에 관악 연주활동도 겸하면서 1952년 45명의 멤버로 구성된  ‘이스트만 윈드앙상블’을 창단하게 된다. ‘이스트만 윈드 앙상블’은 현재 세계정상의 대학밴드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 출발점에 ff가 있었다. (그 당시 연주자들은 졸업 후  미국의 유명교향악단 및 세계 유수의 관현악단의  수석 연주자로 대부분 활동하였다.)

1950년대  미국의 관악연주는 군악대의 연주가 대부분이었고, 연주 레퍼토리 또한 행진곡 과 관현악곡을 편곡한 단조로운 연주로 짜여졌다. 이때 그가  시도한일은 관악을 위한 새로운 작품 위촉과 관악 레코딩 작업이었다. 미국의 유명작곡가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서 관악을 위한 작품을 위촉하였고 , 한편으로는 기존의 군악대를 위한 관악작품을 현대적인 관악편성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병행하였다.

프레드릭 펜넬은 ‘이스트만 윈드 앙상블’과 함께 이스트만/머큐리 레이블로 23개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당시의 LP음반은 현재 CD로 복각되었으며 관악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이 녹음작업으로 기존의 편곡한 관현악 작품과 행진곡 연주를 탈피하여 관악고유의 레퍼토리를 갖게 되었고 우린 군악대나 오케스트라가 아닌 독자적인 음악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스트만 음악원을 터난 펜넬은 1962년부터 미네소타, 달라스, 보스톤, 클리브랜드 등에서 지휘활동을 하였으며 ‘미국음악역사’외 몇 종의 음악 전문서적을 집필하였다. 1984부터 1989년 까지 동경 ‘코세이 윈드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일본 관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그는 보스톤 팝스오케스트라•클리브랜드 심포니•뉴올리언즈 필하모닉 등의 관현악단을 비롯하여, 클리브랜드 심포닉 윈드•달라스 윈드심포니 등 세계적인 관악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프레드릭 펜넬은 수많은 연주와 녹음 세계적인  상을 수여한 위대한 관악 지휘자이며,  미국의 관악전문 출판 ‘Ludwig음악출판사’를 설립하여 관악레퍼토리 발전에 기여하였고, 관악교육에 평생을 헌신한 위대한 교육자이었다.

‘관악’오직 그 하나 만을 위해 삶을 산 관악의 선구자 ‘프레드릭 펜넬’ 그가 이젠 우리 곁에 없다.

글 출처 : 카페-부천윈드앙상블 사라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