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maninov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1악장 Allegro ma non tanto

2악장 Intermezzo. Adagio

3악장 Finale. Alla breve

 

Martha Argerich (piano)
RIccardo Chailly (conductor)
Rundfunk-Sinfonieorchester Berlin

    Live Recording by SFB Werburg GmbH

 

 

Martha Argerich

    마르타 아르헤리치(스페인어: Martha Argerich, 1941년 6월 5일~ )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가

    그녀의 언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 언론에 덜 노출이 해서 비슷한 기량의 다른 연주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지만, 오늘날의 동시대의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아르헤리치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다섯 살이 되는 해에 빈센초 스카라무차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면서 서정미와 감성을 강조하게 됐다. 그녀는 여덟 살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했다.1955년에는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이사해 프리드리히 굴다에게 사사하였고 이후에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스테판 아쉬케나제에게서도 배웠다.

    열 여섯 살이 되던 1957년에 그녀는 3주 동안 제네바 국제 콩쿠르와 페루치오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동시에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스물살 때, 연주 경력의 위기를 겪던 그녀는 페루치오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만났던 아르투로 베네데니 미켈란젤리를 찾아가 배우게 된다.

    아르헤리치는 바르샤바에서 1965년에 열린 제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당시 그녀의 연주에는 당돌하고 대담한 해석을 보여주었던 프레데리크 쇼팽의 연습곡 C 장조(Op. 10, No. 1)가 있다. 이듬해 링컨 센터의 위대한 연주가 시리즈를 통해 미국에 데뷔하게 된다.

    연주 경력

    그 해 그녀는 첫 번째 녹음을 하게 되는데, 쇼팽, 브람스, 라벨, 프로코피예프의 곡이 포함되었다. 몇 년 뒤 그녀는 쇼팽의 소나타 3번, 폴로네이즈 A flat 장조, Op. 53 등의 곡을 녹음하였다. 그녀의 기교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비견될 정도로 당대에서 최고 중의 하나로 인정 받는다. 실제로,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6번과 같은 그녀의 초기(열 아홉살 당시) 콩쿠르 연주곡들의 녹음은 해당 작품의 표준적인 연주로 인정받고 있다.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강약법과 템포가 과장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녀의 연주는 열정적이고 독특한 음색으로 특징지어진다.아르헤리치는 인터뷰에서 솔로 연주를 할 때면 무대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종종 밝혔다. 1980년대 이후로 그녀는 솔로 연주보다는 피아노 협주곡, 실내악곡 주로 연주한다. 또한 라흐마니노프와 메시앙, 프로코피예프와 같은 20세기 서양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작품도 녹음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함께 실려 있는 음반 등이 유명하다.

    로버트 첸과의 첫 번째 결혼 생활 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지휘자인 샤를 뒤트와와 결혼 생활을 했으며, 피아노 연주가인 스티븐 코바셰비치가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이다. 아르헤리치는 매년 페스티발을 열어 젊은 피아노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중요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자주 참여하고 있다. 1980년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세 번째 라운드에서 크로아티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이보 포고렐리치가 탈락한 데 대해 아르헤리치가 불만을 품고 항의하는 차원에서 심사위원을 사퇴하자 포고렐리치에게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아르헤리치는 19세기와 20세기의 비르투오조 피아노 작품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비르투오조’ 작품의 스페셜리스트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레퍼토리는 바흐에서 베토벤, 슈만, 리스트, 드뷔시, 라벨을 거쳐 바르톡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 초반 이후 그녀의 프로그램에서 보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베토벤의 음악들이다.

    아르헤리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돈 크레머의 록켄하우스 페스티벌 그리고 뮌헨 피아노 섬머 등지에서 연주를 해왔다. 1992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는 샤를르 뒤트와가 지휘하는 파리 국립 관현악단과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을 협연했으며 1992년 신년 이브 콘서트에서는 아바도, 베를린 필과 슈트라우스의 ‘부를레스케’를 연주했다. 1993년 8월에는 미샤마이스키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아르헤리치와 도이치 그라모폰사와의 관계는 1967년부터 긴밀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동안 그녀는 수많은 음반들을 녹음했는데 바흐, 브람스, 쇼팽, 리스트, 프로코피에프, 라벨 그리고 슈만등의 독주곡, 아바도와의 쇼팽, 리스트,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뒤트와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시노폴리와의 베토벤 협주곡,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슈만, 쇼팽 실내악곡, 미샤 마이스키와의 바흐 첼로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 첼로 소나타 등이 대표적인 음반들이다. 특히, 기돈 크레머와 함께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은 그녀의 주요 프로젝트중 하나다. 또한 그녀는 크레머와 더불어 슈만의 소나타, 바르톡, 야나첵, 메시앙 등의 작품과 함께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조인트 앨범인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와 멜로디는 1992년 ‘동경 레코드 아카데미’, ‘디아파종’, 1993년 ‘에디슨 어워드’를 수상했다.

    수상 경력

    그래미 상 최고 솔로 연주 부문 (오케스트라 협연):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 솔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및 3번》 (2006년)

    그래미 상 최고 실내악 연주 부문: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하일 플레트네프
        - 《프로코피예프(플레트네프 편곡):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신데렐라〉 모음곡》,  
           《모리스 라벨: 어미 거위》 (2005년)

    그래미 상 최고 솔로 연주 부문(오케스트라 협연)

      샤를 뒤투아 (지휘),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 솔로), 몬트리얼 심포니 오케스트라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및 피아노 협주곡 3번》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3번》 (2000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 1위 (196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