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Clarinet Concerto in D Major Op.61
클라리넷 협주곡 라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편곡 버전)

 

1. Allegro ma non tanto

 

2. Larghetto

 

3. Rondo. Allegro

 

Michael Collins, Clarinet
Mikhail Pletnev, cond.
Russian National Orchestra
 

베토벤의 유일하게 남긴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걸작의 숲'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중기의 명작들이 탄생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베토벤은 '하일리겐 슈타트'의 유서를 쓴 1802년부터 차차 원기를 되찾아 창작력을 회복하던 창작중기는 자기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과 조용히 외계와 자연의 정경에 관심을 갖는 경향을 보여준다.

전자의 경우는 [교향곡 5번 운명]이며, 후자는 [교향곡 6번 전원]으로 볼 수 있으며,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후자의 경향에 가까운 작품으로 전원적, 목가적인 정서를 지니며, 여유롭고 따스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곡이다. 여기에는 당시 사랑하던 요제피네 폰 다임백작의 미망인에 숨겨진 애정이 스며있다고 할 수 있다.

1806년 작곡된 이 곡은, 그 해 12월 23일,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란츠 클레멘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곡의 완성이 늦어 클레멘트는 한번도 연습을 하지 않은 채 초견으로 이 곡을 연주하여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클레멘트는 1780년에 빈에서 태어나 8세 때 빈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하여, 1802년부터 안 데어 빈 극장의 오케스트라 악장에 취임할 정도로 바이올린에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

그의 연주는 우아하고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며, 이런 성향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클레멘트의 연주를 1794년에 처음 들었다. 그때 클레멘트의 노트에 사인을 해주어서 이 14세 소년을 기쁘게 해준다. 그 후 클레멘트는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베토벤과 가까워진다. 베토벤은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와 자주 의논하며 작곡하였고, 초고를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 악보가 1809년 빈의 미술공예사에서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본 시절부터 친구였던 슈테판 폰 브로닝에게 헌정하였다. 베토벤과 클레멘트의 실질적인 교제도 이 협주곡에서 이미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슈테판은 본의 명가 브로이닝 집안의 차남으로 베토벤보다 네살 아래였다. 그는 1794년 법률 공부를 위해 빈으로 왔으며, 그 곳에서 베토벤과의 친교가 더욱 돈독해지며 빈 궁정에서의 지위가 차츰 다져진다. 한편 베토벤은 클레멘트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며, 1824년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1827년 죽음이 임박한 베토벤을 클레멘트가 방문하기도 한다.

베토벤은 이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제2악장과 제3악장을 연결할 때 카덴자풍의 곡을 썻으나. 제1악장을 위한 카덴자를 특별히 작곡하지 않았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이 곡의 카덴자는 특별히 어떤 독주자가 스스로 작곡하여 연주하는 것 외에는 거의 모두가 과거의 명바이올리니스트가 쓴 것이다. 선구적 카덴자로는 브람스와 동시대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하임의 카덴자를 들 수 있다. 이 외에 래오폴드 아우어와 프리츠 클라이슬러의 카덴자 가 있다. 즉, 요하임 시대부터 이 협주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결과 카덴자가 필요하게 된것이다. 결국 베토벤 시대에서 요하임 시대까지 이 협주곡은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 출처. 음악세계,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

 


만월